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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059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경주 손씨

慶州 孫氏

5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9만

2015 인구

105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손순孫順

신라 흥덕왕(826~835) 때의 인물로 석종고사(石鐘故事)의 주인공이며 국효(國孝)로 일컬어진다. 경주 손씨는 그를 중조로 삼으며, 손자 손익원(孫翼源)이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경주 손씨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진한 6촌 가운데 무산 대수촌의 촌장 구례마(俱禮馬)를 원조로 삼는다. 서기 32년 신라 유리이사금 9년에 6부의 이름을 고치면서 대수부를 모량부로 바꾸고 손씨 성을 내렸다고 전한다. 신라 흥덕왕 때의 인물로 석종고사의 주인공인 손순(孫順)을 중조로 하며, 그의 손자 손익원(孫翼源)이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경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다만 고려 이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말 판밀직사사를 지낸 손경원(孫敬源)을 1세조로 하여 계보를 잇는다. 본관 경주는 기원전 57년 6촌이 연합해 이룬 고대국가에서 비롯되어 935년 신라 경순왕 이후 경주라는 이름을 얻었고, 고려에 병합된 뒤 동경을 거쳐 1012년 다시 경주로 정해졌다. 월성이 경주의 다른 이름이어서 월성 손씨라고도 불린다. 후손은 종파·낙선당파·석당공파·수운정파·안락당파 등 13개 파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명을 배출하였다. 손소(孫昭, 1433~1484)는 1459년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록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으며 안동부사를 지냈다. 그 아들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은 1489년 문과에 급제해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병자호란 때는 무과 출신 손종로(孫宗老)가 쌍령 싸움에서 싸우다 전사하였고, 조선 후기의 손상일은 1840년 문과에 급제해 1873년 홍문관부교리를 지냈다. 집성촌은 경주·영주·예천·상주·문경·의성 등 경상북도 일대와 울산, 대구 군위, 경기도 광주·하남·포천, 충청남도 부여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90,200명이다.

독립유공자 5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손진구孫晉球1866–1928경상북도 영천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손수조孫秀祚1874–1938경상북도 기타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손두원孫斗源1883–1919경상북도 안동3.1운동건국훈장 애국장(200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손후익孫厚翼1888–1953경상남도 울산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손돌이孫乭伊1891–1938경상북도 안동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손소

1459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시애의 난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에 책록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문신이다.

조선

손중돈

손소의 아들로 1489년 문과에 급제해 공조판서와 이조판서, 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조선

손종로

무과 출신 무장으로 병자호란 때 쌍령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근현대

손봉숙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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