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심씨
豐山 沈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3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심만승沈滿升
중국 오흥(吳興) 출신으로 상선을 따라 고려에 건너왔다고 전한다. 고려 예종 때 상서봉어(尙書奉御)를 거쳐 태자첨사부 첨사(太子詹事府詹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9세손 심귀령이 조선 개국 초에 풍산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풍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심만승(沈滿升)은 중국 오흥 사람으로 상선을 따라 고려에 동래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예종 때 상서봉어를 거쳐 태자첨사부 첨사에 올랐다고 하며, 그 후손들이 대를 이었다. 시조의 9세손 심귀령(沈龜齡)이 조선 태종을 도운 공으로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풍산군(豊山君)에 봉해지면서 풍산이 본관으로 굳어졌다. 본관 풍산(豐山)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이다.
가문의 역사
심귀령(1350~1413)은 이방원을 도운 공으로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풍산군에 봉해져 가문의 기반을 닦았다. 심귀령의 증손 심정(沈貞)은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화천군에 봉해졌으며, 1519년 기묘사화 때 남곤·홍경주와 함께 조광조 일파를 숙청한 뒤 1527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으나 1530년 김안로의 탄핵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사사되었다. 심정의 손자 심수경(沈守慶)은 1590년 우의정에 올라 좌의정과 영중추부사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에는 팔십에 가까운 나이로 의병을 모아 왜적에 맞섰으며 『견한잡록』을 남겼다. 집성촌은 서울 강서구와 경기도 파주·광주·김포, 인천, 전라북도 임실, 충청남도 서산, 충청북도 괴산 등지에 분포한다. 풍산 심씨 문정공파 묘역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2015년 인구는 11,18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심귀령
1350년에 태어나 1413년에 죽었다. 시조의 9세손으로 이방원을 도운 공에 의해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풍산군에 봉해져 풍산 심씨가 본관을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심정
1471년에 태어나 1531년에 죽었다.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화천군에 봉해졌으며,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였다. 1527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오르고 화천부원군에 진봉되었으나, 1530년 김안로의 탄핵으로 강서에 유배되어 이듬해 배소에서 사사되었다.
심수경
1516년에 태어나 1599년에 죽었다. 호는 청천당(聽天堂)이며 심정의 손자이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기로소에 들었고 좌의정과 영중추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에도 의병을 모아 왜적에 맞섰으며 수필집 『견한잡록』을 남겼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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