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심씨
靑松 沈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24.1만
2015 인구
3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심홍부沈洪孚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인물로, 청송에 세거하며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심홍부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 위위시승을 지냈고, 그가 터를 잡은 경상북도 청송군이 그대로 본관이 되었다. 청송은 옛 청부(靑鳧)와 송생(松生)이 합쳐진 이름으로, 1424년(세종 6) 송생현을 합쳐 청송군이 되었다가 1459년(세조 5) 소헌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청송도호부로 승격되었다. 4세 심덕부가 고려 우왕 때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섰다.
가문의 역사
심덕부의 아들 대에서 가세가 폭발적으로 융성해, 심온이 세종의 국구(장인)로 영의정에 올랐고 심종은 태조의 부마가 되었다. 조선왕조에서 왕비 세 명(세종비 소헌왕후, 명종비 인순왕후, 경종비 단의왕후)과 영의정 등 정승 13명, 부마 4명을 배출해 조선 최고의 외척 명문으로 꼽힌다. 심회·심연원·심지원·심수현·심환지·심상규 등이 잇달아 정승에 올랐고, 조선 후기까지 세도가로서 위상을 유지했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심남일沈南一
건국훈장 독립장본명은 심수택(沈守澤). 전남 함평 출신으로 '전남 제일의 의병장'이라는 뜻에서 스스로 남일이라 칭했으며 호남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1910년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심훈沈熏
건국훈장 애국장본명은 심대섭(沈大燮).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8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중국 망명 중 신채호·이회영 등과 교유했다. 소설 《상록수》와 시 〈그 날이 오면〉을 남겼으며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심성지沈誠之
건국훈장 애족장1894년 돈녕부 도정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896년 을미의병 때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의병대장으로 항일 의병활동을 이끌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가문의 주요 인물
심덕부
고려 말 청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조선 개국 후 좌정승에 오른 문신이다.
심온
세종의 장인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나 태종 대의 옥사로 사사되었다.
소헌왕후
심온의 딸로 세종의 왕비이자 문종·세조의 어머니이다.
심상규
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이자 장서가로 《만기요람》 편찬에 참여했다.
심상정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정의당 대표를 지낸 4선 국회의원이다.
참고 자료
같은 심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