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108.2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영양 남씨

英陽 南氏

1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8.2만

2015 인구

110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남홍보南洪輔

영양 남씨가 1세조로 받드는 인물로 고려 때 찬성사를 지냈다. 남씨의 원시조 남민(南敏)의 후손인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가운데 맏이로, 영양을 본관으로 삼아 계통을 열었다고 전한다. 아우 남군보는 의령 남씨, 남광보는 고성 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남씨의 원시조 남민은 본래 중국 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755년(신라 경덕왕 14) 봉명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 축산항 부근에 표착해 신라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경덕왕이 그가 여남(汝南)에서 왔다 하여 남씨 성을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치게 한 뒤 영양현을 식읍으로 주어 살게 하면서 남씨 일문이 시작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그 후손 남진용의 세 아들이 각각 중시조가 되어 맏이 남홍보는 영양을, 둘째 남군보는 의령을, 셋째 남광보는 고성을 본관으로 삼아 갈라졌다. 본관 영양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이다. 영양 남씨는 다시 대광공파(大匡公派)와 밀직공파(密直公派)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6명과 무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했다. 조선 중기의 남사고(1509~1571)는 역학과 참위·천문·지리·복서에 두루 밝아 사직서 참봉과 관상감 교수를 지냈고 예언가로 이름이 높았다. 남홍보의 7세손 남영번이 울진에, 그 넷째 아들 남수가 영해에 들어간 뒤 후손이 경북 동해안 일대로 퍼졌고, 광해군 때 남실(南實)은 여헌 장현광의 문인이 되고자 청송 안덕에서 대구 동구 입석동으로 옮겨와 세거지를 이루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명신(1698~1772)과 그 아들 남석로가 백불암 최흥원의 문인으로 학문에 힘썼고 효행으로 이름나 정효각이 세워졌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영양군·청송군·영덕군·울진군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82,272명이다.

독립유공자 10명 확인

남자현

건국훈장 대통령장

1872년에 태어나 1933년에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다.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으고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을 뒷바라지했으며, 만주 각지에 교회 열두 곳을 세우고 여성 계몽 사업을 벌였다. 1926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을 시도했고 1933년에는 주만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 암살을 계획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0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남자현南慈賢1872–1933경상북도 영양만주방면건국훈장 대통령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석인南錫仁1878–1907경상북도 청송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77)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승하南昇夏1872–1907경상북도 청송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1)위키백과 ↗공훈록 ↗
남상목南相穆1876–1908경기도 광주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세극南世極1882–1943함경북도 명천만주방면건국훈장 애국장(1996)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복이南福伊1908–1945경상북도 울진국내항일건국훈장 애국장(1991)위키백과 ↗공훈록 ↗
남원수南源壽1915–1943경상북도 울진국내항일건국훈장 애국장(199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지학南志學1915–1943경상북도 울진국내항일건국훈장 애국장(199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효직南孝直1875–1954경상북도 영덕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남승철南升喆1851–1922경상북도 청송의병건국포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남사고

호는 격암(格庵)이며 역학과 천문·지리·복서에 두루 밝아 사직서 참봉과 관상감 교수를 지냈다. 임진왜란과 동서분당을 내다보았다는 예언으로 이름이 높다.

조선

남실

호는 석호(石湖)로, 여헌 장현광의 문인이 되고자 청송 안덕에서 대구 동구 입석동으로 옮겨와 그곳 영양 남씨의 입향조가 되었다. 광해군 대의 어지러운 정치에 염증을 느껴 과거를 포기하고 위기지학에 힘썼다.

조선

남명신

백불암 최흥원의 문인으로 효성이 지극해 조정에 천거되었고, 만년에 와룡암을 짓고 아들 남석로와 함께 학문에 힘썼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