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남씨
固城 南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3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남광보南匡甫
원시조 남민(南敏)의 7대손인 남진용의 셋째 아들로 고성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남민은 본래 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755년 일본에 다녀오다 풍랑을 만나 신라에 표착하였고 경덕왕이 남씨 성과 영양현을 내리자 이름을 민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고성 남씨의 원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래 당나라 사람 김충이라 전한다. 755년 안렴사로 일본에 다녀오다 풍랑을 만나 신라 땅에 표착하였고, 경덕왕이 남씨 성을 내리고 영양현을 식읍으로 주자 이름을 민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시조 남광보(南匡甫)는 남민의 7대손 남진용의 셋째 아들로, 그 후손들이 고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본관 고성(固城)은 변한의 고자미동국에서 비롯되어 737년 신라에 편입되며 고자군이 되었고 757년 고성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896년 경상남도 고성군이 되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승려 혜문(惠文, ?~1234)이 나와 이름을 남겼고, 남금(南琴)이 1382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에 들어와 남수문(南秀文, 1408~1442)이 1436년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남세주(南世周, 1445~1504)는 1487년 별시에 급제하였으나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남주(南趎)는 1514년 별시에 급제하였고, 남충원(南忠元)은 중종의 서자 덕흥군의 사위가 되어 왕실과 인척을 맺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하였으며 2015년 인구는 10,80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혜문
1234년에 죽었다. 고려의 승려로 고성 남씨에서 나온 인물이다.
남수문
1408년에 태어나 1442년에 죽었다. 1436년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문신이다.
남세주
1445년에 태어나 1504년에 죽었다. 1487년 별시에 급제하였으나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남충원
중종의 서자 덕흥군의 사위가 되어 왕실과 인척을 맺었다.
참고 자료
같은 남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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