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나씨
安定 羅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8,934
2015 인구
35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나천서羅天瑞
고려 말의 인물이다. 1370년(공민왕 19)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지경에 이른 1만 5천여 군사에게 수백 석의 양곡을 조달하여 무사히 살려 보낸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공으로 안정백(安定伯)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본관을 안정으로 삼았다.
안정 나씨는 고려 말의 나천서를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나천서가 1370년 이성계의 요동 정벌군이 회군할 때 양곡을 조달해 굶주린 군사를 살린 공으로 안정백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정으로 하였다. 본관 안정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 일대로, 신라 때에는 아시혜(阿尸兮) 또는 아을혜(阿乙兮)라 불렸다. 757년 안현현(安賢縣)으로, 940년 안정현(安定縣)으로 고쳐졌고, 1390년 감무가 설치되었으며 1421년 안비현(安比縣)을 거쳐 1423년 비안(比安)으로 바뀌었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6명, 무과 급제자 4명, 생원시 11명, 진사시 17명, 음관 3명을 배출하였다. 나사종(1440~1491)은 경흥부사로 여진족을 물리치다가 전사하였고, 나식(1498~1546)은 선릉참봉을, 나숙은 부제학을 지냈다. 나급(1552~1602)은 공주목사를, 나열(1731~1803)은 돈녕부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관향사를 맡아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나만갑(1592~1642)은 그 경험을 《병자록》으로 남겼으며, 2015년 인구는 8,93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나사종
1440년에 태어나 경흥부사로 여진족을 물리치다가 1491년 전사한 무신이다.
나만갑
1592년에 태어난 문신으로 홍문관 부교리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 관향사로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고, 그 경험을 기록한 《병자록》을 남겼다.
나급
1552년에 태어나 공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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