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나씨
錦城 羅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9만
2015 인구
13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나총례羅聰禮
고려 정종 때 삼한벽상일등공신(三韓壁上一等功臣)의 호를 받고 삼중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라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의 봉군지를 따라 금성을 관향으로 삼았다.
금성(錦城)은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의 옛 이름이다.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이었다가 금산군·금성군으로 불렸고, 940년 고려 태조 때 나주로 개칭되었다. 시조 나총례가 금성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금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같은 나주 땅을 본관으로 삼는 나주 나씨와는 동성동본이족(同姓同本異族), 곧 성과 본관은 같으나 계통이 다른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성씨 표기는 두음법칙에 따라 나씨로 적는 것이 원칙이나 2007년 8월 예규가 바뀌어 라씨로도 쓸 수 있게 되면서, 금성 나씨와 금성 라씨 두 표기가 함께 쓰인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과 사마시 합격자 12명을 배출하였다. 고려에서는 최우의 선지사용별감을 지내고 장흥부사·전라안찰사·제주부사를 거쳐 형부상서에 오른 나득황, 삼별초 토벌과 일본 원정에 참전해 1등공신에 책봉되고 동지밀직사사를 지낸 나유(?~1292), 상천호와 관군상만호를 지내고 금성군에 봉해진 나익희(?~1344), 1340년 문과에 급제해 명경박사와 진도현령을 지낸 나문규 등이 잇달아 나왔다. 조선에서는 나세찬(1498~1551)이 152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36년 중시에 장원해 병조·홍문관·사헌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권신을 탄핵하다 고성에 유배되고 전주부윤으로 좌천되어 재직 중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희민(僖敏)이다. 임진왜란 때는 나대용(1556~1612)이 이순신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를 비롯한 전구(戰具) 준비와 추진을 맡고 열다섯 차례가 넘는 해전에서 공을 세웠다. 2015년 인구는 58,838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나유
삼별초 토벌과 일본 원정에 참전해 1등공신에 책봉되고 동지밀직사사를 지낸 무신이다.
나익희
상천호와 관군상만호를 지내고 금성군에 봉해진 무신이다.
나세찬
152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36년 중시에 장원한 문신으로, 권신을 탄핵하다 고성에 유배되었다. 시호는 희민(僖敏)이다.
나대용
이순신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를 비롯한 전구 준비를 맡은 무신으로, 옥포·사천·한산도·명량·노량 등 여러 해전에 참전했다. 강진현감과 남해현령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나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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