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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44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광주 반씨

光州 潘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만

2015 인구

34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반충潘忠

고려 말에 정헌대부 공조전서를 지낸 문신이다. 1392년 조선이 세워지자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해양군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졌으며, 이를 계기로 후손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삼아 갈라져 나왔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광주 반씨는 고려에 귀화한 반부(潘阜)를 원시조로, 그 7세손인 반충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반부는 남송 이종 때 문과에 장원하여 한림학사와 이부상서를 지낸 인물로, 몽골 정벌을 간청하다가 권신 가사도의 미움을 사 사신으로 보내져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고 전한다. 원 세조가 그 재능을 아껴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사양하였고, 고려 충렬왕이 그 충의를 높이 사 고려에 머물게 하였다고 하며 거제 반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7세손 반충이 광주백에 봉해지면서 광주 반씨로 분적하였다. 본관 광주는 본래 백제의 무진주였는데 757년 신라 경덕왕 때 무주로 고쳐졌고, 고려 태조 때 광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바뀌었으며 오늘날의 광주광역시이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여러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반석평은 1472년에 태어나 1507년 문과에 급제하고 공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그 아우 반석권은 1552년 충청도 음성으로 옮겨 살아 이 지역 세거의 바탕을 열었다. 반인후는 1591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반윤기는 1648년, 반윤위는 1690년 각각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정랑과 제주교수를 지냈다. 근현대에는 반기문이 국제연합 제8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상당리, 괴산군 괴산읍,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산면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10,25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반석평

1472년에 태어나 1540년에 죽은 문신으로, 1507년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반인후

1555년에 태어난 인물로, 1591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활동에 나섰다.

조선

반윤기

1617년에 태어난 문신으로, 1648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정랑을 지냈다.

근현대

반기문

1944년에 태어난 외교관으로, 국제연합 제8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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