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반씨
巨濟 潘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3만
2015 인구
31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반부潘阜
남송 이종 때 문과에 장원하여 한림학사를 거쳐 이부상서를 지냈다고 전한다. 권신 가사도의 미움을 받아 사신으로 보내져 죽을 위기에 놓였으나 원 세조가 그 재능을 알아보았고, 원에 머물던 고려 충렬왕이 세자 시절 그의 충의를 높이 사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로 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고려에서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고 김방경을 따라 일본 정벌에 공을 세워 시중에 올랐으며,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봉해졌다. 65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기성으로 내려가 정사(精舍)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거제 반씨는 남송에서 고려로 건너와 기성부원군에 봉해진 반부를 시조로 한다. 기성(岐城)은 거제의 옛 지명으로, 반부가 벼슬을 사직한 뒤 기성으로 내려가 자리 잡은 데서 본관이 유래한다. 이 때문에 기성 반씨라는 이칭으로도 불린다. 본관 거제(巨濟)는 오늘날 경상남도 거제시 일대이다. 반부의 7세손 반충(潘忠)이 정헌대부로 공조전서를 지내고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해양군 광주백에 봉해지면서 광주 반씨가 갈라져 나갔다.
가문의 역사
거제 반씨와 여기에서 갈라진 광주 반씨를 합하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는 반익순(潘益淳)이 우왕 때 우시중에 제수되었고, 그 아들 반복해(潘福海)가 우왕의 수양아들이 되어 문하찬성사에 올랐다. 조선 전기에는 반우형이 대사헌을 지내고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반석평이 한성부판윤과 공조판서·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근대에는 일제의 압박에 항거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지사 반하경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12,814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반부
남송에서 고려로 건너와 정당문학과 시중을 지내고 기성부원군에 봉해진 문신으로, 거제 반씨의 시조이다.
반우형
1474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냈고, 중종반정에 참여한 공으로 정국공신에 책록되었다.
반석평
중종 때 한성부판윤과 공조판서·형조판서를 역임한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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