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덕 황씨
懷德 黃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8,385
2015 인구
36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황윤보黃允寶
고려에서 지문성부사와 형부상서를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회덕을 본관으로 하였다.
본관 회덕(懷德)은 백제 때 우술군(雨述郡) 또는 후천(朽淺)이라 불리다가 757년에 비풍군으로 개칭된 고을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동구·대덕구 일대에 해당한다. 시조 황윤보 이래 후손들이 이 지역을 근거로 삼으면서 본관이 되었다.
가문의 역사
회덕 황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명과 무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조선 초에는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황유가 태종의 서녀 숙안옹주의 부마가 되었다. 2015년 인구는 8,38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황자후
1363년에 태어나 1440년에 죽었으며 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황삼성
1552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에 올랐다.
황종해
예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문집 후천집(朽淺集)을 남겼다.
참고 자료
같은 황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