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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5817.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장수 황씨

長水 黃氏

4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7.1만

2015 인구

58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황경黃瓊

신라 말기에 시중(侍中)을 지냈다고 전하는 인물로 장수 황씨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부인은 경순왕의 딸인 경주 김씨라고 전한다.

장수 황씨는 신라 말 시중을 지낸 황경(黃瓊)을 시조로 하고,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을 본관으로 한다. 10세손 황공유가 이의방의 난을 피해 장수에 정착한 데서 관향이 비롯되었다고 전하며, 고려 명종 이전부터 장수를 관향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대가 분명한 기세조(起世祖)는 영의정 황희의 증조부인 황석부(黃石富)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세종 대의 명재상 황희(黃喜)를 배출하면서 명문으로 자리 잡았고, 황희는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황희의 네 아들에게서 호안공파(황치신), 소윤공파(황보신), 열성공파(황수신), 사직공파(황직신)의 4대 파가 갈라졌다. 임진왜란 때 이치·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황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 구한말의 우국지사 황현 등을 배출했으며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4명을 냈다. 2015년 인구는 170,988명이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황현黃玹

건국훈장 독립장

호는 매천(梅泉). 《매천야록》을 남긴 재야 사학자이자 우국지사로, 1910년 한일병합 소식을 듣고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당시 국민장, 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황정연黃正淵

건국훈장 애족장

1921년 9월 서울에서 김희중·이춘구 등과 조선독립단을 조직하고 경리부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같은 해 10월 체포되어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황병주黃秉周

건국훈장 애족장

천도교인으로 천도교 중앙본부와 연락을 유지하며 1919년 충남 공주 신상면(유구)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황현黃玹1855–1910전라남도 구례계몽운동건국훈장 독립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황해수黃海水1894–1948전라북도 임실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황희

세종 대에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조선의 대표적 재상으로 청백리의 상징으로 꼽힌다.

조선

황수신

황희의 아들로 세조 대에 영의정에 올랐으며 열성공파의 파조이다.

조선

황진

임진왜란 때 이치 전투에서 승리하고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무장.

조선

황윤길

1590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와 왜의 침략 가능성을 보고한 문신.

근현대

황현

《매천야록》을 남기고 경술국치에 항거해 자결한 구한말의 지식인.

근현대

황정순

'국민 어머니'로 불린 대한민국의 원로 배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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