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2532.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하양 허씨

河陽 許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1만

2015 인구

253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허강안許康安

고려 현종 때 호부낭장을 지낸 인물이다. 말년에 호장을 거쳐 하주자사(河州刺史)가 되어 하주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 터전인 하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하양 허씨는 고려 현종 때 호부낭장을 지낸 허강안을 시조로 한다. 그는 말년에 호장을 거쳐 하주자사가 되어 하주에 자리 잡았고, 후손들이 이를 따라 본관을 하양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하주(河州)는 하양의 옛 지명으로 1018년 하양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오늘날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일대가 그곳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걸쳐 중앙 관계에 인물을 잇달아 내면서 영남의 이름난 사족으로 자리 잡았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고려 문과 1명을 포함해 모두 15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다. 조선 초의 허주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에서 형조참의를 거쳐 판한성부사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간숙이다. 그 아우 허조는 1390년(공양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 때 좌의정에 올랐고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경이다. 허조의 아들 허후는 예조판서에 올라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좌찬성으로 단종을 보필하였으나, 계유정난 뒤 거제도에 유배되어 교살되었다. 조선 중기의 허임은 침술로 이름난 어의로 1644년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을 간행하였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경산시·영천시, 경상남도 창녕군·합천군, 전라북도 진안군·고창군·정읍시, 대구광역시 수성구 등지에 있다. 2015년 인구는 20,608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허석

건국훈장 애국장

1918년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격문을 붙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출옥한 뒤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순국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허주

1359년에 태어나 1440년에 죽은 문신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에서 형조참의와 호조참판 등을 거쳐 판한성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간숙이다.

조선

허조

1369년에 태어나 1439년에 죽은 문신으로 1390년 공양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세종 때 좌의정에 올랐고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경이다.

조선

허후

예조참판과 경기도관찰사·형조참판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고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좌찬성으로 단종을 보필하다가 계유정난 뒤 거제도에 유배되어 교살되었다.

조선

허임

선조와 광해군 때 활동한 의원으로 조선 제일의 침의(鍼醫)로 알려졌다. 1644년 자신의 임상 경험을 정리한 침구경험방을 간행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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