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허씨
金海 許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13.6만
2015 인구
7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허염許琰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의 35세손으로, 고려 중엽 삼중대광에 오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허씨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왕비 허황옥 사이에서 어머니 성을 이은 아들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김해 허씨는 그 35세손인 허염을 중시조로 삼아 김해를 본관으로 한다. 김해는 낙동강 하구 남서쪽에 위치해 가락국의 중심지로 발전한 곳으로, 532년 신라에 병합된 뒤 금관군이 되었다가 여러 변천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가문의 역사
허염의 후손들은 고려에서 고위직을 역임했으며 허유전은 고려 후기 정승에 올랐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고, 같은 뿌리인 양천 허씨와 함께 번성하였다. 가락군파(허인전)·시중공파(허유전)·상서공파(허상)·징파(허징)의 4파를 중심으로 여러 소분파가 있으며, 구한말 경북 선산(구미) 일대의 왕산 허위 일가는 4형제가 모두 항일 투쟁에 나선 대표적 독립운동 가문이 되었다. 근현대에는 진주 지수 출신 허만정 계열이 LG·GS 그룹의 한 축을 이루었고, 분성 허씨 표기를 합한 2015년 인구는 약 13만 6천 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허위許蔿
건국훈장 대한민국장호는 왕산(旺山). 1896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개해 의병을 일으켰고, 1907년 고종 강제 퇴위 뒤 경기 연천에서 재기해 13도창의군 군사장으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하였다. 1908년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로 순국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허훈許薰
건국훈장 애국장왕산 허위의 맏형으로 도산서원·병산서원 원장을 지낸 유학자였으며, 1896년 청송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송의진을 결성하고 토지 60만 평을 팔아 아우들의 의병 군자금으로 내놓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허겸許蒹
건국훈장 애국장허훈의 아우이자 허위의 형으로 을미의병과 정미의병에 참여했고, 국권 상실 후 만주로 망명해 경학사를 계승한 부민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10여 년간 남북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허진許瑨
관료·사법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1921년 판사 시험에 합격해 일제강점기 판사로 재직하였고, 광복 후 서울고등법원장을 거쳐 1954년부터 대법관을 지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허영호許永鎬
종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불교학자이자 승려로 활동했으나 전시 체제기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 종교 부문과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1990년 3·1운동 참가를 근거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나 2010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허황옥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왕비로 허씨의 시원(始原)이 되는 인물이다.
허유전
고려 충숙왕 대 정승에 오른 문신으로 시중공파의 파조이다.
허형식
허위의 종질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을 맡아 북만주 항일유격전을 이끌다 1942년 전사하였다.
허정
3·1운동 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고 4·19 이후 과도내각 수반(제6대 국무총리)을 지냈다.
허만정
진주 지수 출신 실업가로 LG그룹 공동창업에 참여해 GS그룹의 뿌리가 되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기업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허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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