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유씨
昌原 兪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3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유섭兪涉
고려 말 14세기 전반에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고 창원군에 책봉되었다. 창원 유씨는 1988년에 두 계파가 각각의 파시조를 시조로 모시는 양시조 체제를 공식화하여, 직제학공파는 유섭을, 판서공파는 판도사 판서를 지낸 유연(兪演)을 시조로 삼는다. 두 계파 모두 신라 아찬 유삼재를 시조로 하는 기계 유씨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전한다.
창원 유씨는 신라 아찬 유삼재를 시조로 하는 기계 유씨에서 분관한 가문이다. 기계 유씨 13세 유숙손(兪叔孫)이 합포현으로 옮겨 와 정착한 것이 창원 세거의 시작이라 전한다. 합포현은 1282년 회원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408년 의창현과 회원현을 합쳐 창원부가 설치되면서 본관이 창원으로 편호되었다. 1726년 처음 족보를 간행할 때에는 상계가 분명하지 않았으며, 1988년에 두 계파가 각각의 파시조를 시조로 모시는 양시조 체제를 공식화하였다. 직제학공파의 시조 유섭(兪涉)은 고려 말 보문각 직제학을 지내고 창원군에 책봉되었으며, 판서공파의 시조 유연(兪演)은 판도사 판서를 지냈다. 본관 창원은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들어와 직제학공파에서 여러 문신이 배출되었다. 유해(兪瀣)는 인조 때 첨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유창(兪瑒)은 숙종 때 호조참판과 개성유수를 역임하였다. 유득일(兪得一)은 숙종 때 병조판서와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그 밖에 유신일·유회일·유집일·유숭 등이 관직에 나아갔다. 판서공파에서는 유언겸(兪彦謙)이 중종 때 효행으로 관직과 효자 정문을 받았고, 유세렴·유후양·유응채 등이 이름을 남겼다. 집성촌은 직제학공파가 세거한 경기도 화성시와 판서공파가 세거한 충청남도 천안시 일대에 있다. 2015년 인구는 11,088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유득일
숙종 때 병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역임한 문신이다.
유창
숙종 때 호조참판과 개성유수를 지냈다.
유언겸
판서공파의 인물로 중종 때 효행이 알려져 관직을 받고 효자 정문이 세워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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