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유씨
居昌 劉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8만
2015 인구
21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유전劉荃
한 고조 유방의 41세손으로 송나라에서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내다가 1082년 고려 문종 36년 팔학사의 일원으로 고려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경상북도 영일 지역이라 한다. 그의 맏아들 유견규(劉堅規)가 거타군(居佗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거창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유전이 1082년 고려에 들어와 정착하고, 그의 맏아들 유견규가 거타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거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유견규의 아우 유견구(劉堅矩)는 대사헌을 지냈고, 유견구의 아들 유웅열(劉雄悅)은 판전리사사로 아림군(娥林君)에 봉해져 아림군파의 파조가 되었다. 본관 거창은 경상남도 북서부에 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거열군이었는데 경덕왕이 거창으로 고쳤고, 1018년 현종 9년 합주에 속하였다가 조선 태종 때 거제현과 합하여 제창현이 되었으며 여러 변천을 거쳐 1895년 거창군이 되었다. 거창 유씨에서 갈라져 나온 본관으로는 유전의 8세손 배천군 유국추를 시조로 하는 배천 유씨와 9세손 옥천부원군 유승비를 시조로 하는 강릉 유씨가 있다.
가문의 역사
큰 줄기는 거타군파와 아림군파로 나뉘며, 거타군파는 다시 병판공파, 통정공파, 진사공파, 훈도공파로 갈라졌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는 유덕개(劉德蓋) 1명이며 무과 급제자 16명과 생원시·진사시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정유재란 때 의병장 유명개(劉名蓋)는 경남 안의 황석산성에서 순절하여 감찰에 증직되었다. 조선 숙종 때의 의학자 유이태는 홍역을 다룬 전문 의서 『마진편(麻疹篇)』을 지어 이름을 남겼다. 2015년 인구는 27,770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유이태
호는 신연당(新淵堂)·원학산인(猿鶴山人)이며 조선 숙종 때의 의학자다. 두진과 마진이 유행하자 1696년 홍역 전문 의서인 『마진편(麻疹篇)』을 저술하였고, 『인서문견록』과 『실험단방』 등 경험방을 남겼다. 어의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을 사양하고 향리로 돌아갔으며 묘는 산청 생초면 갈전리에 있다.
유명개
1548년에 태어나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일어나 경남 안의 황석산성에서 순절하였고 감찰에 증직되었다.
유재열
1941년에 태어나 육군대장에 올랐고 제3군사령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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