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6915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양천 허씨

陽川 許氏

0

확인 독립유공자

2

수록 친일 기록

15만

2015 인구

6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허선문許宣文

공암촌(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살며 농사에 힘써 곡식을 비축하였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량을 대어 삼한공신에 올랐다고 전한다.

양천 허씨는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 일대를 관향으로 한다. 시조 허선문은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의 30세손으로 전해지며, 왕건에게 군량을 지원한 공으로 공암촌을 식읍으로 받았다고 한다. 고려 때 공암(孔巖)이 양천(陽川)으로 개칭되면서 양천 허씨로 불리게 되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에서 허재·허공 등이 재상에 오르고 충선왕비 순비 허씨를 배출했으며, 조선에서는 형제 정승 허종·허침이 나왔다. 허엽과 그 자녀인 허성·허봉·허균·허난설헌은 이른바 '허씨 5문장'으로 불리고,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 우의정을 지낸 학자 허목, 영의정 허적 등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동주사공파·판도좌랑공파·대제학공파의 세 파로 나뉜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허진許璡

중추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무과 출신으로 군수·절도사·관찰사를 지냈고, 한일 병합 이후 1910년부터 1921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찬의를 지내며 한국병합기념장 등을 받았다.

출처 확인 ↗

허섭許燮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922년부터 1942년까지 연천·용인·장단·부천·수원 군수를 차례로 지내며 군용물자 조달과 국방헌금 모금 등 전시 동원 업무를 수행하였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허공

충렬왕대 재상을 지낸 문신으로 양천 허씨를 크게 일으켰다.

조선

허준

선조·광해군대의 어의로 《동의보감》을 편찬한 의학자.

조선

허난설헌

조선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시집 《난설헌집》이 전한다.

조선

허균

《홍길동전》의 작가로 알려진 문신이자 문장가.

조선

허목

우의정을 지낸 남인의 영수이자 전서에 뛰어났던 학자.

근현대

허영만

《식객》, 《타짜》 등을 그린 만화가.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