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 함씨
楊根 咸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6만
2015 인구
28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함혁咸赫
삼한시대에 지금의 경기도 양평 용문산 일대를 중심으로 소국을 다스린 군장으로 전한다. 함씨는 그를 시조로 받들고 그 근거지였던 양근을 관향으로 삼았다. 고려 초의 대호족 함규를 중시조로 하여 계보가 이어진다.
함씨는 마한의 소국을 다스렸다는 함혁을 시조로 하고, 그 근거지였던 양근을 본관으로 삼았다. 양근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의 옛 이름이다. 중시조 함규는 고려 초 광주 지역의 대호족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익찬개국공신에 책록되고 대광에 올랐으며, 왕씨 성을 받아 왕규(王規)로 불렸으나 이른바 왕규의 난에 연루되어 945년 처형되었다. 조선 개국을 전후해 형제가 길을 달리하면서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된 함부림 계통은 강릉 함씨의, 고려 말 예부상서를 지내고 새 왕조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함부열 계통은 양근 함씨의 파조가 되었다. 두 본관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동원분파여서 1936년 병자보를 편찬할 때 합보하였다.
가문의 역사
함씨 전체로는 고려 3명과 조선 3명 등 문과 급제자 6명과 무과 급제자 22명, 생원·진사시 합격자 16명, 잡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고려에서는 함유일이 묘청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공부상서에 올랐으며, 같은 시기 인물로 함순이 전한다. 조선 개국 무렵 함부열이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켜 새 왕조의 벼슬을 마다한 뒤로 그 후손들이 양근 함씨를 이루었다. 집성촌은 강원도 강릉·고성·양양·김화 등지와 평안남도 문덕·안주 일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15,81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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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함규
고려 초 광주 지역의 대호족으로 태조 왕건을 도와 익찬개국공신에 오르고 대광을 지냈으며, 왕씨 성을 받아 왕규로 불렸다.
함유일
1106년에 태어나 1185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묘청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공부상서를 지냈다.
함부열
고려 말 예부상서를 지내고 조선 개국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인물로 양근 함씨의 파조다.
참고 자료
같은 함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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