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함씨
江陵 咸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2만
2015 인구
13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함규咸規
고려 개국공신으로 익찬개국공신에 책록되고 대광 광평시랑평장사를 지낸 인물이다. 고려 태조에게서 왕씨(王氏) 성을 사성받아 왕규로 불렸으며, 945년 이른바 왕규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함씨의 원조로는 마한 소국의 왕이었다고 전하는 함혁(咸赫)을 든다.
원조 함혁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 용문산 일대에서 소국을 다스렸다고 전하며, 그 자리를 함왕주악(咸王周鍔)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손 함규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태조에게서 왕씨 성을 사성받았고, 이 계통에서 양근(楊根)과 강릉(江陵) 두 본관이 갈라졌다. 강릉은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이며, 양근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으로 함혁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이라 전한다. 두 계통은 1936년 병자보(丙子譜)를 합보하면서 본관을 따로 가르지 않게 되었으나, 인구조사에서는 지금도 강릉과 양근이 따로 집계된다. 후손은 정평공파(함부림), 죽계공파(함부열), 예판공파(함부실), 칠봉공파(함헌) 등으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과거 급제자는 문과 6명(고려 3명, 조선 3명), 무과 22명, 생원·진사시 16명, 잡과 4명, 취재 1명이 확인된다. 고려에서는 묘청의 난 평정에 참여하고 공부상서를 지낸 함유일(1106~1185)과 강좌칠현의 한 사람으로 꼽힌 문장가 함순이 나왔다. 조선에 들어서는 함부림(1360~1410)이 1385년 문과에 급제해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그 계통이 정평공파를 이룬다. 함우치(1408~1479)는 형조판서를 지내고 동평군에 봉해졌으며, 함헌(1508~?)은 중종 때 명나라에서 공자상을 들여오고 오봉서원 설립을 주도했다. 집성촌은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와 성산면 위촌리, 고성군 간성읍 교동리를 비롯한 강원 동해안 일대와 양양·삼척, 그리고 평안남도 문덕·안주, 황해도 연백 등 이북 지역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61,974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함태영咸台永
건국훈장 독립장3·1운동 때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 독립선언서 900장을 인쇄하고 운반·배포하는 일을 맡았다. 이 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2년 만에 가석방되었다. 출옥 뒤 1922년 목사 안수를 받고 청주교회 등에서 목회하며 조선신학원 이사장을 지냈고,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제3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함유일
묘청의 난 평정에 참여하고 공부상서를 지낸 문신이다.
함부림
1385년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어 대사헌과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동원군(東原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함헌
중종 때 명나라에서 공자상을 들여오고 오봉서원 설립을 주도한 문신이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쓰고 1970년 월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사상가로, 한일회담 반대와 유신 반대 등 민주화·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함인섭
제6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고 강원대학교를 설립한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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