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 송씨
冶城 宋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만
2015 인구
25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송맹영宋孟英
고려 목종 때 간의대부(諫議大夫)와 총부의랑(摠部議郞)을 지낸 인물이다. 나라에 세운 공으로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지고 합천의 야로(冶爐) 지역을 식읍으로 받았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본관을 야성으로 삼았다.
야성 송씨는 고려 목종 때 간의대부와 총부의랑을 지낸 송맹영을 시조로 한다. 그가 나라에 공을 세워 야성군에 봉해지고 합천의 야로 지역을 식읍으로 받으면서 후손들이 야성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본관 야성은 오늘날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일대이며, 그런 까닭에 야로 송씨(冶爐 宋氏)라는 이칭도 함께 쓰인다. 시조의 10세손 송구(宋構)가 재상어사로 영남에 파견되었다가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송천에 터를 잡으면서 성주 일대에 뿌리를 내렸고, 같은 항렬의 송희미는 합천에서 경기도 장단으로 옮겨 갔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15세부터 직장공파·상호군공파·대호군공파·현령공파·선전공파·우후공파로 갈렸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19명을 냈다. 조선 중기의 송희규는 151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과 현풍현감·호조정랑·상주목사·대구도호부사 등을 지냈고, 1547년 사헌부 장령으로서 윤원형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유배되었다가 1565년 직첩을 돌려받았다. 근대에는 미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송종익이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의 재정을 맡아 독립운동을 뒷받침하였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일대에 80여 호 규모로 남아 있고, 1656년 창건된 문중재사 성주 추원당이 전한다. 2015년 인구는 20,020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송종익宋鍾翊
건국훈장 독립장1887년에 태어나 1956년에 죽은 재미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공립협회에 가입한 뒤 흥사단 이사장과 대한인국민회 재무를 맡았고, 1941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 겸 재무, 1944년 주미외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송구
시조의 10세손으로 충목왕 때 경기 감사를 지냈다. 재상어사로 영남에 파견되었다가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송천에 터를 잡아 성주 입향조가 되었다.
송희규
1494년에 태어나 1558년에 죽은 문신으로 호는 야계이다. 151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현풍현감·호조정랑·상주목사·대구도호부사 등을 지냈고, 1547년 사헌부 장령으로 윤원형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유배되었다. 1565년 직첩을 돌려받았고 뒤에 정려와 효우비가 세워졌다.
참고 자료
같은 송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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