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송씨
南陽 宋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3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송공절宋公節
고려에서 문하시랑을 지낸 인물로 위키백과는 그를 남양 송씨의 시조로 기록한다. 그의 아들 송침(宋琛)이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 문하시중에 오르고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다만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은 당나라에서 신라에 귀화한 송규(宋奎)를 시조로 보고 송공절은 안서파(雁西派)의 파조로 적고 있어 상계에 이설이 있다.
시조 송공절(宋公節)은 고려에서 문하시랑을 지낸 인물로, 그 후손들이 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아들 송침(宋琛)은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 문하시중에 오르고 남양군에 봉해졌다. 다만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은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하여 경순왕 때 이부상서를 지낸 송규(宋奎)를 시조로 보고, 송공절을 안서파의 파조로 기록하고 있어 상계에는 이설이 남아 있다. 본관 남양(南陽)은 옛 남양군으로 현재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이며, 송규가 지금의 남양읍 송림리에 정착하여 일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문중은 송세보(宋世輔)를 파조로 하는 도촌파(道村派)와 송공절을 파조로 하는 안서파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송충이 병부상서를 지냈고 송침이 문하시중에 올라 남양군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현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송구가 세종 때 경상도관찰사를 지냈고 송석이 좌통례를 역임하였다. 후손들은 본관지인 남양 일대에 일찍부터 세거하였으며,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송림리가 대표적인 세거지로 전한다. 2015년 조사에서 화성시에 거주하는 남양 송씨는 100명으로 파악되었으며, 전국 인구는 11,04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송침
시조 송공절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 문하시중에 올랐고 남양군에 봉해졌다.
송충
고려에서 병부상서를 지냈다.
송구
세종 때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송석
조선에서 좌통례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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