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송씨
新平 宋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송구진宋丘進
고려시대에 봉익대부(奉翊大夫) 서운관정(書雲觀正)과 습사도감판관을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 송구진 이래 후손들이 신평을 관향으로 삼았다. 신평은 삽교천 하구에 자리한 고을로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일대에 해당한다. 시조의 5세와 6세 대에서 크게 네 갈래로 나뉘어, 5세 송현량에서 영광파가, 송현식에서 해남공파가 갈라졌다. 송현덕의 아들 대에서는 6세 송희경이 담양 노송공파를, 송구가 장성 참판공파를 이루었다. 관향은 충청도이지만 분파 과정에서 세거지가 호남으로 옮겨간 점이 이 가문의 특징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이 이 가문을 대표한다. 송순은 1493년에 태어나 1519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홍문관부제학·경상도관찰사·전라도관찰사·대사헌·이조참판을 거쳐 의정부우참찬에 이르렀고 1582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숙정이다. 1533년 담양 제월봉 아래에 면앙정을 세워 호남 제일의 가단을 이루었고 한시 505수와 「면앙정가」를 비롯한 국문시가를 남겨 강호가도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담양·장성·해남·영광과 전라북도 부안 등지에 분포한다. 근현대에는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송진우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지낸 송상현 등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13,916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송진우宋鎭禹
건국훈장 독립장1890년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로 호는 고하이다. 1918년 김성수·현상윤·최린·최남선 등과 중앙학교 숙직실을 근거지로 독립운동의 방책을 꾸몄고 3·1운동이 일어난 며칠 뒤 구속되어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1921년 동아일보가 주식회사로 개편되면서 3대 사장에 취임해 30년 가까이 신문을 이끌었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은 사건으로 사장에서 물러났다. 1945년 12월 30일 한현우 등의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으며 1963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송진우宋鎭禹 | 1890–1945 | 전라남도 담양 | 문화운동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송순
1493년에 태어나 1582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이다. 자는 수초 또는 성지, 호는 기촌 또는 면앙정이며 1519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거쳐 의정부우참찬에 이르렀다. 1533년 담양에 면앙정을 세우고 「면앙정가」를 비롯한 시가를 지어 호남 가단을 열었으며 시호는 숙정이다.
송상현
1941년에 태어난 법학자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와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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