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배씨
星州 裵氏
5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4.9만
2015 인구
7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배위준裵位俊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벽상공신에 올랐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고려 개국공신 무열공 배현경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성주 배씨는 그를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 배위준의 5세손 배인경이 고려 충선왕 때 추밀원사를 지내고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성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성주의 옛 지명을 따라 성산 배씨 또는 경산 배씨라고도 부르며,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성주와 성산이 따로 집계된다. 성주는 본래 성산가야 땅으로 신라에 편입된 뒤 벽진군·본피현·신안현을 거쳐 940년 경산부가 되었고, 1413년 태종 때 성주목으로 승격했으며 1896년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배인경의 아들 배문적과 배무적에서 갈라져 화당공파·안렴공파·진사공파·직제학공파·재신공파 등으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11세손 배극렴이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돕고 1392년 조선 개국 1등 공신이 되어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지고 문하좌시중에 오르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1명을 배출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청도군수 배응경이 의병을 일으키고 배흥립이 이순신 휘하의 조방장으로 활약했다. 병자호란 때는 배명순이 철령에서 청군과 싸우다 전사해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집성촌은 성주군 대가면·월항면을 비롯해 김천·의성·고령·달성 등 경북 일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성주 배씨 83,620명과 성산 배씨 65,052명을 합해 148,672명이다.
독립유공자 5명 확인
배성룡裵成龍
건국훈장 애족장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경제평론가로, 일본 니혼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동아일보·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와 논설 주필로 활동했다. 1926년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형을 살았고, 광복 후에는 좌우합작촉진회와 민족자주연맹에 참여했으며 1948년 남북협상에 김규식의 특사로 다녀온 뒤 통일독립촉진회 상무집행위원을 지냈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배학보裵鶴甫
건국훈장 애국장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1년 권쾌복·유흥수 등 동교생 15명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고 부당수로 활동하다 비밀문건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4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배극렴
1378년 경상도원수로 왜구를 격파하고 1388년 조전원수로 위화도회군에 참여했으며, 1392년 조선 개국 1등 공신이 되어 성산백에 봉해지고 문하좌시중에 올랐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배응경
1576년 문과에 급제했고 청도군수로 있던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순천부사와 나주목사·대구부사를 지냈다.
배흥립
1572년 무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조방장으로 이순신 휘하에서 공을 세워 수군절도사와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다.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배설
1583년 무과에 급제해 경상우수사에 올랐고,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전선 12척을 수습해 후퇴한 뒤 이순신에게 넘겼다. 그러나 명량해전 직전 진영을 이탈해 전란이 끝난 뒤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후에 전공이 인정되어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배용순
독립운동가 윤봉길의 아내로 1922년 혼인했으며, 남편이 중국으로 망명한 뒤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집안을 지켰다.
배호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등을 남긴 1960년대의 대표적인 인기 가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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