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씨(昔)
慶州 昔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경주 석씨(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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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친일 기록
1만
2015 인구
34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석탈해昔脫解
신라 제4대 임금 탈해 이사금이다. 다파나국의 왕비가 낳은 큰 알에서 태어나 궤에 담겨 바다를 떠돌다 신라 땅에 닿았다는 설화가 전한다. 까치 작(鵲) 자에서 새 조(鳥)를 떼어 낸 석(昔)을 성으로 삼았다고 하며, 유리 이사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경주 석씨는 신라 제4대 임금인 탈해 이사금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석탈해는 다파나국에서 알로 태어나 궤에 담겨 신라 땅에 닿았고, 까치 작 자에서 새 조를 떼어 낸 석을 성으로 삼았다는 설화가 전한다. 석씨는 박씨·김씨와 더불어 신라의 왕성을 이룬 성씨로, 석탈해 이후로도 여러 임금을 냈다. 본관 경주는 경상북도 동남부의 지명으로, 박혁거세가 세운 사로국에서 서라벌·계림·신라를 거쳐 고려 때 경주(慶州)로 고쳐졌다. 신라의 왕성이었던 월성(月城)을 따 월성 석씨라고도 하여, 두 표기는 같은 가문을 가리킨다.
가문의 역사
석씨는 신라에서 탈해 이사금을 비롯해 벌휴·내해·조분·첨해·유례·기림·흘해 이사금 등 여러 임금을 배출하였다. 조분 이사금 때의 석우로는 석씨 인물 가운데 이름이 널리 전하는 장군이다. 신라의 왕위가 김씨로 굳어지고 나라가 무너진 뒤로는 사서에 오르는 인물이 크게 줄었다. 오늘날 월성 석씨와 경주 석씨 두 표기를 함께 쓰며, 2015년 인구는 10,27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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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석벌휴
탈해 이사금 이후 석씨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라 석씨 왕계를 이은 신라의 임금 벌휴 이사금이다.
석우로
조분 이사금 때 왜와 싸운 기록이 전하는 인물로, 석씨 가운데 이름이 널리 전한다.
석흘해
신라 석씨 왕계의 마지막 임금인 흘해 이사금이다.
참고 자료
같은 석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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