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석씨
忠州 石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2만
2015 인구
16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석린石隣
고려 의종 때 일어난 경인난에 이의방에 의해 서경낭장으로 발탁된 무신이다. 1176년 상장군과 동서북면병마사에 올랐고 예성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충주 석씨는 고려 의종 때의 무신 석린(石隣)을 시조로 한다. 석린은 경인난 때 이의방에 의해 서경낭장으로 발탁되었고, 1176년 상장군과 동서북면병마사에 올라 예성군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뒤에 한성판윤을 지낸 석수명 대에 홍주로 분관하여 홍주 석씨(洪州石氏)가 갈라져 나왔으며, 홍주는 오늘날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문과 1명과 조선 문과 3명, 무과 34명, 생원시 4명, 진사시 5명, 음관 1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 판개성부사를 지낸 석문성은 1377년 왜구를 격퇴하는 데 활약하고 예성군에 봉해졌으며, 1374년 급제한 석여명은 성균관 생원을 지내고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조선 초에는 석양선이 홍양부원군에 추봉되었다. 구한말에는 을미사변 뒤 의병을 일으켰다가 자결한 석성국과 의병으로 활동하다 고문 중 자결한 석창문이 나왔고, 법률가 석진형과 경학원문목을 지은 석재준도 이 시기의 인물이다. 2015년 인구는 41,802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석문성
판개성부사를 지낸 무신으로 1377년 왜구를 물리치는 데 활약하고 예성군에 봉해졌다.
석성국
을미사변이 일어난 뒤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다 1895년 자결하였다.
석창문
1885년에 나서 1908년에 죽은 의병으로 붙잡혀 고문을 받던 중 자결하였다.
석진형
1877년에 나서 1946년에 죽은 구한말의 법률가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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