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신씨
居昌 愼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1만
2015 인구
14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신수愼修
송나라 개봉부 출신의 진사로 고려에 귀화한 인물이다. 1075년(문종 29) 시어사가 되었고 숙종 때 수사공 우복야 참지정사를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거창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신수가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해 벼슬한 뒤 후손들이 경상남도 거창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신씨(愼氏)는 사실상 거창 단본으로, 다른 본관으로 갈라진 예가 거의 없다. 13세 신이충의 아들 3형제 대에서 참판공파(신기), 서령공파(신언), 양간공파(신전)의 3파로 갈라졌고, 15세에 이르러 10개 종파로 확대되었다. 참판공파는 다시 5개, 서령공파는 3개, 양간공파는 3개의 세부 파로 나뉘어 계세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대과 급제자 34명을 배출하였고, 영의정 3명과 판서 16명, 관찰사 8명이 나왔다. 신승선은 1495년부터 1500년까지 영의정을 지냈고 딸이 연산군의 비가 되면서 거창부원군에 봉해졌다. 그의 장남 신수근 역시 영의정에 올라 익창부원군이 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 때 목숨을 잃었고, 신수근의 딸은 중종의 첫 왕비 단경왕후가 되었다가 책봉 이레 만에 폐위되었다. 이처럼 두 임금의 왕비를 배출하고도 정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 조선 전기 이 가문의 굴곡진 내력이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경산시와 대구광역시를 비롯해 경상남도, 전라남북도, 경기도 일원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51,153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신승선
1495년부터 1500년까지 영의정을 지냈고 딸이 연산군의 비가 되면서 거창부원군에 봉해진 문신이다.
신수근
신승선의 장남으로 영의정에 올라 익창부원군에 봉해졌으나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지 않아 죽임을 당했고, 시호는 신도공(信度公)이다.
단경왕후
신수근의 딸로 1499년 진성대군과 혼인해 중종 즉위와 함께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아버지가 반정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레 만에 폐위되었으며, 인왕산 치마바위 설화가 그와 관련해 전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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