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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933.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아주 신씨

鵝洲 申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3.4만

2015 인구

193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신익휴申益休

아주 신씨가 시조로 받드는 고려 때 인물이다. 다만 문헌에 따라 그 아들로서 아주현의 권지호장을 지낸 신영미(申英美)를 시조로 기록하기도 한다. 후손들이 아주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아주 신씨는 신익휴를 시조로 삼으며, 문헌에 따라서는 아주현의 권지호장을 지낸 신영미를 시조로 기록하기도 한다. 본관 아주(鵝洲)는 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 일대로, 본래 거로현(巨老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아주현으로 이름이 바뀌어 거제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이래 거제 지역에는 아주현·송변현·명진현의 세 고을이 있었고 그 가운데 아주가 이 가문의 발상지이다. 후손들은 거제에서 거창과 상주를 거쳐 경상북도 의성으로 옮겨 갔는데,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를 지낸 신윤유가 고려가 망하자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의성 입향조가 되었다.

가문의 역사

의성에 자리 잡은 뒤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난 인물이 잇달아 나왔다. 신우와 신원록은 효자로 이름이 높았고, 신지제는 1562년에 태어나 1624년에 죽었는데 1589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정언과 예조좌랑, 지평, 성균관전적을 거쳐 1604년 세자시강원문학과 성균관직강을 지냈다. 신지제는 예안현감으로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대를 모아 적을 토벌하였고 선무·호종 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의성에 장대서원을 세워 지방 자제를 가르쳤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와 용연리, 금성면 하리·개일리·도경리, 사곡면 매곡리, 봉양면 구산리·구미리 등에 형성되었고 충청북도 청주에도 세거지가 있다. 2015년 인구는 33,710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신윤유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를 지냈고 고려가 망하자 의성군 단밀면으로 내려와 은거한 의성 입향조이다.

조선

신원록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로 뒤에 장대서원에 배향되었다.

조선

신지제

1562년에 태어나 1624년에 죽었다. 자는 순부, 호는 오봉·오재이며 1589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정언과 예조좌랑, 지평 등을 지냈고 예안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만나 군대를 모아 적을 토벌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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