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용씨
洪川 龍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용득의龍得義
고려 때의 문신으로 1208년(희종 4) 시어사(侍御史)를 지냈고 1241년(고종 28)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팔만대장경을 다시 새기는 일을 지휘하였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홍천 용씨는 고려 때 시어사와 문하시중을 지낸 용득의를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시조가 팔만대장경 재조 사업을 지휘하였다고 전해 오며, 우리나라 용씨는 대부분 홍천을 본관으로 한다. 본관 홍천은 본래 고구려의 벌력천현(伐力川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녹효현(綠驍縣)으로 고쳐졌고 고려 때 홍천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의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일대이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무과 급제자 10명과 진사시 합격자 2명을 배출하였다.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는 용의생(龍誼生) 때부터 수정구 상적동의 저푸리에 자리를 잡아 세거하였고, 그의 맏아들 용호강(1660~1732)은 조봉대부 장례원정을 지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낸 용환승,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을 지낸 용홍택, 제21대 국회의원 용혜인 등이 알려져 있다. 2015년 인구는 14,483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용득의
1208년 시어사, 1241년 문하시중을 지낸 문신으로 팔만대장경을 다시 새기는 일을 지휘하였다고 전한다. 홍천 용씨의 시조이다.
용호강
1660년에 태어나 1732년에 죽었으며 조봉대부 장례원정을 지냈다. 경기도 성남 상적동에 세거한 홍천 용씨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용혜인
1990년에 태어났으며 제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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