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2152.7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행주 기씨

幸州 奇氏

3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7만

2015 인구

215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기순우奇純祐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를 지냈다. 1688년 숙종 14년 족보를 간행할 때 이곡(李穀)이 지은 기황후의 아버지 영안왕 기자오의 행장을 근거로, 기자오의 5대조인 그를 1세조로 정하였다. 그의 아들 기수전(奇守全)도 문하평장사를 역임하였다고 전한다.

본관 행주는 옛 경기도 행주로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대이며, 덕양(德陽)이 행주(幸州)의 별칭이므로 덕양 기씨라고도 부른다. 보첩에 전하는 상계는 은나라 현인 기자(箕子)에서 유래하는데, 기자의 후손인 마한 원왕의 세 아들 가운데 큰아들 우평이 태원 선우씨, 둘째 우량이 청주 한씨, 셋째 우성이 덕양 기씨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청주 한씨, 태원 선우씨와는 이성동본(異姓同本)의 관계로 본다. 역사서에 처음 나타나는 인물은 936년 9월 일리천 전투에 고려군 좌강으로 참전한 원윤 기언(奇言)이다. 1688년 족보를 간행하면서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 기순우를 1세조로 삼았고, 조선 세종 때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을 지낸 기건(奇虔)을 중시조로 모신다.

가문의 역사

기순우의 손자 기윤위·기윤숙·기필선은 고려 고종 때 대장군으로 이장대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특히 기윤숙은 최충헌 집권기에 중서문하성의 벼슬을 두루 지내며 가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기윤숙의 증손 총부산랑 기자오(奇子敖)의 막내딸이 1340년 원 혜종의 제2황후로 책봉되면서 기자오가 영안왕에 봉해지고 기철·기원 등 일가가 원나라를 배경으로 한 세도가가 되었으나, 공민왕의 반원 개혁으로 다수가 주살되었다. 조선에 들어와 기현의 손자 기면이 공조전서를 지내고 그 아들 기건이 대사헌과 판중추부사를 역임하며 가문을 중흥시켰으나, 기건의 증손 기준(奇遵)은 1521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교살되었다. 1530년 중종 25년 기건의 증손 기진(奇進)이 아우 기준의 화를 피해 광주 고룡리 금정마을로 낙남하면서 후손이 전라도에 뿌리내렸고, 기진의 아들 고봉 기대승이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가문을 다시 번성시켰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2명과 무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전라남도 장성군, 무안군 운남면 연리, 황해도 금천군 좌면 암사리 등에 형성되어 있으며, 2015년 인구는 27,379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기삼연奇參衍

건국훈장 독립장

자는 경로, 호는 성재(省齋)이며 1851년 전라남도 장성 소곡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 조카뻘인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며 백마장군이라 불렸고,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장성 수련산에서 호남창의회맹소를 조직하여 대장에 올라 장성·고창·법성포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순창에서 체포되어 광주에서 총살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

기산도奇山度

건국훈장 독립장

호는 의재(毅齋)이며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의병장 기삼연의 재종손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박종섭·안한주 등과 결사대를 조직하고 1906년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군부대신 이근택을 습격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의병 투쟁에 뛰어들었고 3·1운동 뒤에는 임시정부의 전라남북도 의무금 요구 특별위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다시 3년형을 받았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기우만奇宇萬1846–1916전라남도 화순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8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기삼연奇參衍1851–1908전라남도 장성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기탁성

의종 때 교위에서 근위대 장군이 되었고 정중부의 무신정변에 가담하여 권신이 되었으며,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판병부사와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에 올랐다. 1179년 죽은 뒤 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

고려

기황후

총부산랑 기자오의 막내딸로 1340년 원 혜종의 제2황후로 책봉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아버지가 영안왕에 봉해지고 오빠 기철 등 일가가 고려에서 큰 권세를 누렸다.

조선

기건

학행으로 발탁되어 지평에 제수된 뒤 연안군수, 제주목사,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 대사헌, 판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으며, 시호 정무(貞武)를 받고 중시조로 모셔진다.

조선

기대승

호는 고봉(高峯)이며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선조 때 성균관 대사성과 대사간,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조선

기정진

1798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호는 노사(蘆沙)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진원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 자료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