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564.5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풍천 노씨

豊川 盧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4.5만

2015 인구

15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노지盧址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지내고 신라로 건너온 도시조 노수(盧穗)의 셋째 아들로, 고려에서 풍천백(豊川伯)에 봉작되었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풍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1세조로 삼는 중시조는 고려의 국자진사 노유(盧裕)다.

시조 노지가 풍천백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풍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풍천은 고구려의 구을현(仇乙縣)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고려 때 풍주(豐州)로 이름이 바뀌었고 995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413년 풍천군이 되었다. 지금의 황해도 지역이다. 노씨는 당에서 신라로 건너온 노수를 도시조로 삼고 그 아들들에게서 여러 본관이 갈라져 나온 것으로 전하며, 풍천은 그 가운데 셋째 아들 계통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전기의 노숙동(1403~1463)은 1427년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예문관제학과 대사헌, 호조참판을 지내고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그 증손 노진(1518~1578)은 1546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청백리에 선발되어 대사헌과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시호는 문효(文孝)다. 임진왜란 때는 동래교수 노개방이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했고, 노형하는 팔미군자라는 별호로 사림의 존경을 받았으나 사헌부 지평 재직 중 요절하였다. 근현대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노백린이 나와 가문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집성촌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와 임실군, 경상남도 하동군과 함양군, 전라남도 곡성군 등지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45,200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노백린盧伯麟

건국훈장 대통령장

황해도 풍천군 출신으로 1919년 한성임시정부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부 총장을 맡아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2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 한국 최초의 한인비행사학교를 세워 항공 전력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후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와 국무총리를 여러 차례 역임하다 1926년 1월 상하이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3월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노백린盧伯麟1875–1926황해도 송화임시정부건국훈장 대통령장(1962)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노숙동

1427년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예문관제학과 대사헌, 호조참판을 지내고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된 문신이다.

조선

노진

노숙동의 증손으로 1546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청백리에 선발되어 대사헌과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시호는 문효다.

조선

노개방

1588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동래교수가 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하였다.

조선

노형하

진사시를 거쳐 문과 을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사림의 존경을 받아 팔미군자라는 별호가 붙었으나 사헌부 지평 재직 중 요절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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