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염씨
坡州 廉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3만
2015 인구
12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염형명廉邢明
고려 태조 때 사도(司徒)를 지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된 인물이다. 그가 살던 곳이 봉성현이었던 까닭에 후손들이 처음에는 봉성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시조 염형명 이후 아들 염위가 군기승, 손자 염가칭이 병마사, 증손 염현이 우보궐, 현손 염한이 병부상서, 6세 염덕방이 태부소경, 7세 염신약이 정당문학을 지내며 대대로 벼슬이 이어졌다. 본관은 처음 봉성이었다가 중시조 염제신이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지면서 곡성으로 고쳤고, 이후 서원(瑞原)을 거쳐 조선 연산군 때 서원이 파주로 개칭되면서 파주로 확정되었다. 파주는 삼국시대 고구려 영역이었다가 757년 파평현(坡平縣)이 되었고, 1460년 파주목으로 승격했으며 1996년 파주시가 되었다. 후손은 국파공파(염국보)·동정공파(염흥방)·청강공파(염정수) 세 갈래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고려에서 염승익이 충렬왕 때 흥법좌리공신에 책록되고 첨의중찬에 올랐으며, 염제신(1304~1382)은 원나라에서 정동성낭중과 익정사승을 지내다 돌아와 문하시중에 이르고 서북면 도원수로 오로산성의 야인을 정벌했으며 곡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그 아들 염흥방(?~1388)은 1357년 과거에 장원 급제해 밀직제학과 도병마사를 지내고 최영과 함께 제주 목호 토벌에 참여했으나, 1388년 우왕 때 임견미·염정수 등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임진왜란 때는 염걸·염언상·염말경·염서·염세경·염경·염제립·염홍립 등이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공신 등에 추서되었다. 집성촌은 수원시 장안구, 강원도 양구군, 전라남도 보성군·나주시, 전라북도 임실군, 충청북도 옥천군·음성군과 함경남도 단천·홍원 등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63,350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염승익
충렬왕 때 흥법좌리공신에 책록되고 첨의중찬에 오른 문신이다.
염제신
원나라에서 정동성낭중을 지내다 돌아와 문하시중에 이르고 서북면 도원수로 야인 정벌에 나선 문신이다. 곡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염흥방
1357년 과거에 장원 급제해 밀직제학과 도병마사를 지내고 제주 목호 토벌에 참여한 문신으로, 호는 동정(東亭)이다. 1388년 임견미 등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염상섭
《만세전》과 《삼대》를 쓴 소설가로, 1921년 발표한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된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유학 중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참고 자료
같은 염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