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한씨
淸州 韓氏
14명
확인 독립유공자
5명
수록 친일 기록
75.3만
2015 인구
1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한란韓蘭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러 청주를 지날 때 군례로 맞이하고 군사와 군마, 대군이 먹을 군량미를 제공하였다. 그 공으로 개국벽상공신이 되고 삼중대광 태위에 올랐다.
청주 한씨는 고려 개국벽상공신 한란을 시조로 한다. 한란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40세 무렵 청주 방서동으로 이주하였고, 왕건의 후백제 정벌을 도운 공으로 공신에 책록되면서 청주(淸州)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청주는 본래 마한 땅으로 백제 때 상당현, 신라 때 서원경이었다가 940년 청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 시대에 도첨의중찬 한강, 청성군 한수, 영의정 한상경 등을 배출하고 태조 왕건의 비 신의왕후를 내며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315명, 정승 12명, 공신 24명, 대제학 1명, 왕비 6명을 배출하였고, 좌의정 한확과 영의정 한명회가 세조의 묘정에 배향되어 삼한갑족으로 일컬어졌다. 한명회는 두 딸을 예종 비 장순왕후와 성종 비 공혜왕후로 들여보내 조선 전기 최고의 권신이 되었다. 근현대에도 한용운과 국무총리 세 명(한승수·한명숙·한덕수)을 배출하였으며, 2015년 기준 약 75만 명이다.
독립유공자 14명 확인
한용운韓龍雲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본관은 청주이고 호는 만해(萬海)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자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덧붙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을 남기고 끝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한봉수韓鳳洙
건국훈장 독립장본관은 청주이고 충북 청주 출신으로 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으로 복무하다 1907년 군대 해산 후 의병을 일으켜 일본 헌병대장을 사살하는 등 유격전을 벌였다. 3·1운동 때도 청주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한훈韓焄
건국훈장 독립장본명은 한우석이고 호는 송촌(松村)으로, 대한광복회에 참여해 친일 부호 처단과 조선총독 처단 계획을 추진하였다. 여러 차례 투옥되며 항일투쟁을 이어갔고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한기악韓基岳
건국훈장 애국장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초대 임시의정원 의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부 위원을 지냈고, 귀국 후 동아일보 편집국장 대리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며 신간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한용운韓龍雲 | 1879–1944 | 충청남도 홍성 | 3.1운동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봉수韓鳳洙 | 1883–1972 | 충청북도 청원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한훈韓焄 | 1889–1950 | 충청남도 청양 | 의열투쟁 | 건국훈장 독립장(1968)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계석韓桂錫 | 1888–1939 | 전라북도 임실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기욱韓基昱 | 1867–1922 | 함경북도 경원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2009)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덕리韓悳履 | 1871–1939 | 경기도 양평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한창은韓昌殷 | 1875–1968 | 평안북도 의주 | 임시정부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한병호韓秉浩 | 1881–? | 충청북도 청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2012)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한범우韓範愚 | 1902–1920 | 강원도 원주 | 3.1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한원택韓遠澤 | 1912–1938 | 제주도 제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200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성준韓成俊 | ?–1940 | 미상 | 미주방면 | 건국포장(202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석화韓錫化 | 1897–? | 제주도 제주 | 3.1운동 | 대통령표창(202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한백흥韓伯興 | 1897–1950 | 제주도 제주 | 3.1운동 | 대통령표창(2018)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5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한창수韓昌洙
관료·조선귀족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은 청주이며 조선 말기 관료를 거쳐 1910년 한일병합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이왕직 장관을 지냈으며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한상룡韓相龍
경제·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이완용을 외삼촌으로 둔 금융인으로 한성은행 총무와 전무취체역을 거쳐 1923년 두취(은행장)에 올랐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이사와 고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고문을 역임하며 전시 동원에 협력했고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올랐다.
출처 확인 ↗한규복韓圭復
관료·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은 청주로 충청북도지사와 황해도지사를 거쳐 1933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된 이른바 신념형 친일 관료이다. 광복 후 반민특위에 자수해 조사받았으며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한상억韓相億
조선귀족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청주인 조선귀족으로 남작 작위를 습작하고 일제 말기 전시 협력 단체에 참여하였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한진창韓鎭昌
관료·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은 청주로 대한제국에서 탁지부 참서관과 강원도·충청남도·전라북도·경상북도 관찰사, 군부 협판 등을 지냈고 일제강점기인 192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였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한확
명나라와의 외교에서 활약하고 좌의정에 올랐으며 세조의 묘정에 배향된 문신으로, 딸이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이다.
한명회
계유정난을 설계하고 영의정에 오른 조선 전기 최고의 권신으로 두 딸을 예종·성종의 왕비로 들였다.
한백겸
호는 구암(久菴)으로 우리나라 역사지리 연구의 효시로 평가받는 《동국지리지》를 저술한 실학의 선구자이다.
한원진
인물성이론(호론)을 주장해 조선 후기 호락논쟁을 이끈 성리학자이다.
한덕수
경제 관료 출신으로 제38대와 제48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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