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사씨
靑州 史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8,248
2015 인구
37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사요史繇
중국 산둥성 청주(靑州) 출신으로 명나라 개국공신이 되어 예부상서에 올랐던 인물이다.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모함을 받자 장남 사중(史重)을 데리고 1372년(공민왕 21) 고려로 망명하여 경기도 파주 월롱면 위전리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중국의 본향인 청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이 가문의 본관 청주(靑州)는 충청북도 청주(淸州)가 아니라 중국 산둥성 칭저우로, 시조 사요의 출신지를 그대로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사(史)씨는 중국 경조(京兆) 지역에서 계출된 성씨로, 주나라 때 사질(史侄)이라는 벼슬 이름을 따서 사씨가 되었다고 전한다. 시조 사요가 고려로 망명해 파주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의 사씨가 시작되었다.
가문의 역사
시조의 아들 사중은 파주에 살면서 조선 세종 때 경상좌도관찰사를 지냈고, 그 후손이 파주·울진·연기·홍천·함흥·철원·강화 등지로 갈라져 나갔다. 분관으로 청송 사씨(靑松 史氏)가 있는데, 사요가 중국에 두고 온 둘째 아들 사직(史直)의 8세손 사세용(史世用)이 정유재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출정했다가 난이 평정된 뒤 조선에 귀화하여 경상북도 청송에 터를 잡은 데서 비롯되었다. 2015년 인구는 8,248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사중
시조 사요를 따라 고려로 망명해 파주에 정착하였고, 조선 세종 때 경상좌도관찰사를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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