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하씨
晉州 河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22.6만
2015 인구
4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하공진河拱辰
고려 현종 때의 무신으로,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때 현종을 호종하고 적진에 들어가 담판으로 거란군을 철수시킨 뒤 볼모로 잡혀가 순절하였다. 진주 하씨 시랑공파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진주 하씨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며 진양 하씨(晉陽 河氏)로도 표기한다. 진주 지역의 토착 호족 세력에서 비롯되어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토성(土姓)을 분정받은 것으로 전한다. 고려 초 이후 계보를 잇는 방식에 따라 시랑공파(시조 하공진)와 사직공파(시조 하진) 등 여러 계통으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 하을지가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공민왕대 공신에 올랐으며, 조선 개국 이후에는 태종대 영의정 하륜, 세종대 영의정 하연을 배출해 재상가로 자리 잡았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와 조선 8문장가로 꼽힌 하응림도 이 가문 출신이다. 1451년(문종 1) 편찬된 경태보는 문화 류씨 영락보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족보로 꼽히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서문만 전한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하용제河龍濟
건국훈장 애족장경남 산청 출신으로, 1919년 김창숙 등 유림 대표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청원서(파리장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뒤 옥고의 여독으로 1919년 순국하였고,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하겸진河謙鎭
건국훈장 애족장진주 출신의 유학자로 곽종석의 문인이며, 1919년 파리장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27년에는 김창숙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경북 제2차 유림단 사건)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하판락河判洛
경찰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고등계 형사로, 독립운동가와 기독교인을 잔혹하게 고문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광복 후에도 처벌받지 않고 기업인으로 지냈다. 2009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경찰 부문)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올랐다.
출처 확인 ↗하준석河駿錫
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일제강점기 경남 지역의 대자본가로 성장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함께 올랐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하공진
거란의 침입 때 현종을 구하고 적진에서 순절한 무신.
하륜
태종을 도와 조선 초기 제도를 정비한 영의정.
하연
세종대 영의정에 올라 궤장을 하사받은 명재상.
하위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된 사육신의 한 사람.
하춘화
1960년대부터 활동해 온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
하현회
LG유플러스 대표이사를 지낸 기업인.
참고 자료
같은 하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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