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소씨
晉州 蘇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1만
2015 인구
14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소알천蘇閼川
아찬 소휴곤과 가미로부인 사이에서 577년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나 686년 진주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한다. 화랑과 국선을 거쳐 상대등에 올랐고, 654년 진덕여왕이 승하할 때 상대등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뒤에 진주로 옮겨 살면서 이름을 소경(蘇慶)으로 고쳤다고 하며, 이때부터 진주를 관향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시조 소알천이 만년에 진주로 이거하면서 후손들이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진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고 신라에 편입된 뒤 거타주와 청주를 거쳐 강주도독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에 들어와 940년 다시 강주가 되었다가 983년 진주목으로 개편되었다. 한동안은 고려 말 상호군을 지낸 소희철(蘇希哲)을 중시조로 삼았으나, 뒤에 시조를 소경으로 정리하였다. 우리나라 소씨(蘇氏)는 사실상 진주 단본으로 이어져 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2명과 무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고, 생원시와 진사시에서는 51명의 합격자를 냈다. 소세량은 1507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홍문관검열을 거쳐 1524년 대사간에 올랐으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남원부사를 자원하였다. 그의 아우 소세양은 1509년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판서를 거쳐 좌찬성과 대제학에 이르렀으며, 문명이 높고 율시에 뛰어나 양곡집을 남기고 익산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소동도는 1635년 증광문과에 급제해 의주부윤과 경주부윤, 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역시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집성촌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와 남원시, 고창군에 주로 분포하며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에도 세거지가 있다. 2015년 인구는 51,409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소세량
1507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홍문관검열과 사헌부 장령을 거쳐 1524년 대사간에 올랐으나 부모 봉양을 위해 남원부사를 자원한 문신이다.
소세양
1509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형조·공조·이조판서를 거쳐 좌찬성과 대제학에 이른 문신으로, 문명이 높고 율시에 뛰어나 양곡집을 남겼으며 익산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소동도
1617년 생원시를 거쳐 1635년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의주부윤과 경주부윤,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문신이다.
참고 자료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