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姜)
晉州 姜氏
한글 표기가 같은 다른 가문이 있어요: 진주 강씨(康)
25명
확인 독립유공자
4명
수록 친일 기록
116만
2015 인구
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강이식姜以式
고구려의 병마도원수로, 598년과 612년 수나라의 침입 때 대군을 이끌고 맞서 싸운 장수로 전한다. 진주 강씨는 그를 시조로 받들며, 후손들이 고려 시대에 진주 지역에 자리 잡으면서 본관이 정해졌다.
진주 강씨는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을 시조로 하며, 진양 강씨라고도 한다. 6세손 강택인이 밀직부사를 지낸 뒤 진안후에 봉해졌고, 그 아들 강진이 875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진양후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晉州)로 삼게 되었다고 전한다. 본관인 진주는 경상남도 진주시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시대에는 1018년 거란의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격파한 강감찬이 문하시중에 올라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그 부장이었던 강민첨도 은열공으로 이름을 남겼다. 조선 시대에는 세조 때 영의정 강맹경,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강희안과 그 아우 좌찬성 강희맹, 연산군 때 우의정 강구손, 인조 때 우의정 강석기 등이 나와 재상과 학자를 두루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문인화가 강세황이 진경산수와 남종문인화풍의 정착을 이끌었다. 박사공파가 전체의 약 80%를 차지하며 소감공파·시중공파·인헌공파·은열공파 등으로 나뉜다. 2015년 기준 약 116만 명(진양 강씨 표기 합산)이다.
독립유공자 25명 확인
강우규姜宇奎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본관은 진주이고 평안남도 덕천 출신의 한의사로,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다. 65세의 고령으로 의거를 결행한 뒤 체포되어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강기동姜基東 | 1884–1911 | 경기도 장단 | 의병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진원姜振遠 | 1881–1921 | 전라남도 승주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77)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명규姜明奎 | 1896–1983 | 황해도 봉산 | 만주방면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창제姜昌濟 | 1898–1965 | 평안북도 창성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독립장(196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문진姜文鎭 | 1869–1929 | 전라남도 나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달주姜達周 | 1880–1960 | 전라남도 나주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원호姜元浩 | 1882–? | 평안북도 강계 | 의병 | 건국훈장 애국장(199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봉환姜奉煥 | 1867–1961 | 제주도 제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문주姜文周 | 1879–1945 | 전라북도 옥구 |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계대姜啓大 | 1884–1971 | 전라북도 임실 | 3.1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강경진姜景鎭 | 1893–1940 | 전라북도 남원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강우석姜佑錫 | 1901–1965 | 경상남도 하동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면하姜冕夏 | 1901–1987 | 함경남도 이원 | 임시정부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강해석姜海錫 | 1904–1973 | 전라남도 광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200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석원姜錫元 | 1908–1991 | 전라남도 광주 | 학생운동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강창거姜昌擧 | 1910–2004 | 제주도 제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200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수원姜壽元 | 1916–2003 | 전라북도 고창 | 일본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원명姜元明 | 1917–1999 | 함경북도 회령 | 중국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공흡姜公洽 | 1917–1974 | 제주도 제주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석린姜錫麟 | 1919–1997 | 전라북도 김제 | 일본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1999)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강규언姜圭彦 | 1898–1927 | 제주도 제주 | 3.1운동 | 대통령표창(1993)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일원姜一遠 | 1923–2006 | 경상북도 안동 | 학생운동 | 대통령표창(1996)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강동석姜東錫 | 1928–2004 | 경상북도 상주 | 학생운동 | 대통령표창(1999) | 위키백과 ↗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4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강대련姜大蓮
종교(불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진주인 승려로 용주사 주지와 30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을 지내며 조선 불교를 일본 불교에 통합하려는 움직임에 앞장섰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강동희姜東曦
관료·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진주이고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관료로 도평의회원을 거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강경희姜敬熙
관료·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관이 진주인 조선 말기의 관료로 대한제국 중추원 의관을 거쳐 191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에 임명되었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강번姜藩
경제·금융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일제강점기의 관료 겸 금융인·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며 식민지 금융 정책에 협력하였다.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강감찬
1019년 귀주대첩에서 거란 10만 대군을 격파하고 문하시중에 오른 명장으로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강민첨
귀주대첩에서 강감찬을 도와 거란군을 물리친 장수로 은열공에 봉해졌다.
강희안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으며, 원예서 《양화소록》을 남긴 문신이자 화가이다.
강세황
호는 표암(豹菴)으로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의 발전을 이끈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자 평론가이다.
강영훈
육군 중장을 지낸 뒤 주영국 대사 등을 거쳐 제21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다.
참고 자료
같은 강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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