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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013.2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장흥 마씨

長興 馬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3.2만

2015 인구

201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마려

백제의 개국공신이다. 기원전 18년 오간 등 열 사람과 함께 고구려 동명왕의 셋째 아들 온조를 인도하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해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다고 전한다. 온조왕이 개국원훈인 그에게 좌보(左輔) 벼슬을 내리고 마사량현을 식읍으로 주었다고 한다.

장흥 마씨는 백제 개국공신 마려를 시조로 한다. 온조를 도와 나라를 세운 공으로 좌보에 오르고 마사량현을 식읍으로 받았다고 전하는데, 이 마사량현이 곧 본관 장흥의 옛 땅이다. 고려 초에 이 고을을 회령(會寧)으로 고쳐 불렀고 인종 때 회령이 장흥에 속하게 되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장흥으로 삼았다. 오늘날 전라남도 장흥군 일대에 해당한다. 중시조는 마혁인(馬爀仁)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조선 초의 마천목은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 3등에 녹훈되어 전지 80결과 노비 8구 등을 하사받고 회령군에 책봉되었다. 1429년에는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올라 장흥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431년 죽자 세종이 영의정에 추증하였다. 조선 전기의 마승은 청백리로 칭송받았고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정유재란 때에는 마하수가 명량해전에서 왜선에 포위된 가운데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같은 해 마응방도 남원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여 가문에서 여러 순절 인물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31,886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마천목

1358년에 태어나 1431년에 죽은 무신이다. 1401년 익대좌명공신 3등에 녹훈되어 전지와 노비를 하사받고 회령군에 책봉되었으며, 1429년 보국숭록대부에 올라 장흥부원군에 봉해졌다. 죽은 뒤 세종이 영의정에 추증하였다.

조선

마승

1393년에 태어나 1463년에 죽은 문신으로 청백리라 칭송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조선

마하수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에 참전하여 왜선에 포위된 가운데 적의 총탄에 맞아 1597년 전사하였다.

조선

마응방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근현대

마달천

1929년에 태어나 2016년에 죽은 정치인으로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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