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원씨
原州 元氏
5명
확인 독립유공자
4명
수록 친일 기록
12.7만
2015 인구
8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원경元鏡
당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한 8학사(學士) 중 한 사람으로, 보장왕 책봉과 국교 회복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에 책봉되었다고 전한다.
원주 원씨는 시조와 계대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하나의 본관을 쓴다. 당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전해지는 원경을 시조로 하는 운곡공계,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익찬일등공신 정의대부 병부령을 지내고 원성백에 봉해진 원극유를 중시조로 하는 원성백계, 고려 신종 때 문과에 급제해 우시랑을 지낸 원익겸을 중시조로 하는 시중공계가 그것이다. 원주는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으로 신라 때 북원소경이었다가 940년(고려 태조 23) 원주로 고쳐졌다.
가문의 역사
운곡파·원성백파·시중공파·충숙공파의 4파로 이어지며, 고려 말 충숙공 원충갑은 원주성에서 합단적을 물리쳐 이름을 남겼고 원천석은 고려가 망하자 치악산에 은거해 절의를 지킨 학자로 태종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기 여주를 지킨 원호, 인조반정 정사공신 2등으로 좌의정에 오른 원두표 등을 배출하였다. 강원·경기·충청·전북과 서북 지방, 제주까지 전국에 집성촌이 분포하며 2015년 인구는 약 12만 6천여 명이다.
독립유공자 5명 확인
원심창元心昌
건국훈장 독립장3·1운동 참여 후 흑우회·흑색공포단 등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고, 1933년 상하이에서 주중 일본공사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되어 나가사키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원세훈元世勳
건국훈장 독립장1919년 블라디보스토크 대한국민의회 대표로 상하이에 가 임시정부 통합 교섭을 벌였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원태우元泰祐
건국훈장 애족장1905년 을사늑약 직후 경기 안양 부근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에 돌을 던져 부상을 입힌 뒤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원용팔元容八
건국훈장 애국장1862년생으로 을미의병 때 여주 심상희 의진의 후군장과 유인석 의진의 중군장으로 활약했고, 1905년 9월 원주·제천·영월 등지에서 다시 의병 천여 명을 모아 항쟁하다 체포되어 1906년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4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원응상元應常
중추원·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대한제국 탁지부 관료를 거쳐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사(1918~1921)와 전라남도지사(1921~1924)를 지내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였다. 친일파 708인 명단, 친일인명사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모두 등재되었다.
출처 확인 ↗원병희元炳喜
중추원·사법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일제강점기 사법 관료로 재직한 뒤 조선총독부 중추원에 참여하였다. 친일파 708인 명단 중추원 부문과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사법·중추원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9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원은상元殷常
관료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일제강점기 도 참여관을 지낸 관료로,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도 참여관 부문과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원용덕元容德
군인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1932년부터 1945년까지 만주국군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만주국군 장교 경력으로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광복 후 대한민국 육군 중장과 헌병총사령관을 지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원충갑
1291년 합단적의 침입 때 원주성을 지켜낸 무장으로 충숙공파의 파조이다.
원천석
고려가 망하자 치악산에 은거해 절의를 지킨 학자로 『운곡시사』를 남겼다.
원호
임진왜란 때 여주 신륵사 일대에서 왜군을 격퇴한 의병장이다.
원두표
인조반정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좌의정에 오른 문신이다.
원미경
198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드라마 배우이다.
원성진
국내외 기전에서 우승한 프로 바둑기사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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