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 민씨
驪興 閔氏
12명
확인 독립유공자
3명
수록 친일 기록
16.7만
2015 인구
6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민칭도閔稱道
고려 때 사람으로 여흥(지금의 경기도 여주)에 자리 잡은 인물이다. 후손 민영모가 현달하자 그의 증조부인 민칭도를 시조로 추대하여 계보가 정리되었다.
여흥 민씨는 경기도 여주시를 관향으로 하며, 고려시대에는 여주의 옛 이름을 따 황려 민씨(黃驪閔氏)로도 불렸다. 1138년 문과에 급제해 재상에 오른 민영모를 중시조로 삼아 가계가 뚜렷해졌고, 상서공파·정의공파 등 스물 남짓한 파로 갈라졌다.
가문의 역사
고려에서 민지가 첨의정승에 올라 여흥부원군에 봉해지는 등 문한 가문으로 자리 잡았고, 조선에서는 태종비 원경왕후를 시작으로 인현왕후·명성황후·순명효황후 등 왕비 4명과 상신 12명, 문과 급제자 242명을 배출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기에는 외척 세도가문으로 정치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만큼 구한말 이후 독립운동가와 친일 인사가 함께 나온 가문이기도 하다.
독립유공자 12명 확인
민영환閔泳煥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대한제국의 고위 관료로 서구를 시찰하며 개혁을 주장하였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뒤 국민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출처 확인 ↗민긍호閔肯鎬
건국훈장 대통령장대한제국 원주 진위대 군인으로, 1907년 군대 해산에 맞서 봉기해 강원도 일대에서 100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한 의병장이다. 1908년 횡성에서 전사하였다.
출처 확인 ↗민종식閔宗植
건국훈장 대통령장이조참판을 지내다 을미사변 후 낙향했고, 1906년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주성을 점령한 병오홍주의병의 대장이다.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출처 확인 ↗민영구閔泳玖
건국훈장 독립장독립운동가 민제호의 아들로 상하이에서 성장해 중국군 및 군수품 수송 임무와 항일 선전공작을 수행했고,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임시정부 재무부 경리국장 겸 광복군총사령부 상교참모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해군사관학교장을 지냈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출처 확인 ↗민제호閔濟鎬
건국훈장 애국장1912년 상하이로 건너가 동제사와 대한민국청년단에서 활동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외무부 참사와 외사국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민태곤閔泰崑
건국훈장 애족장남작 작위를 승계한 조선귀족 신분이었음에도 도호쿠제국대학 재학 중 조선인 유학생들과 비밀결사를 조직해 창씨개명 반대와 독립운동 단체 건설을 도모하다 체포되었고, 1944년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9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민영환閔泳煥 | 1861–1905 | 서울 | 계몽운동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종식閔宗植 | 1861–1917 | 충청남도 기타 | 의병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긍호閔肯鎬 | 1865–1908 | 강원도 미상 | 의병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용호閔龍鎬 | 1869–1922 | 경상남도 산청 | 의병 | 건국훈장 독립장(1977)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찬호閔燦鎬 | 1877–1954 | 황해도 평산 | 미주방면 | 건국훈장 애국장(2016) | 위키백과 ↗ | 공훈록 ↗ |
| 민병길閔丙吉 | 1884–1942 | 충청남도 아산 | 임시정부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충기閔忠基 | 1888–1932 | 충청남도 대전 | 임시정부 | 건국훈장 애국장(1991)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영달閔泳達 | 1859–1924 | 서울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199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 민태곤閔泰崑 | 1917–1944 | 경기도 경성 | 일본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2009) | 위키백과 ↗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3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민영휘閔泳徽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민씨 척족의 핵심 인물로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 때 청군을 끌어들였고, 1910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일제강점기 최대의 재산가 중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그의 재산 일부를 국가에 환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출처 확인 ↗민병석閔丙奭
중추원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한일 병합에 협력해 자작 작위를 받은 경술국적의 한 사람으로, 이왕직 장관을 거쳐 1925년부터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다섯 차례 중임하였다.
출처 확인 ↗민원식閔元植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국민협회를 조직해 조선인 참정권 청원 운동을 벌이며 3·1운동을 비판한 친일 관료로, 1921년 도쿄에서 양근환에게 처단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원경왕후
태종의 비이자 세종의 어머니로, 태종의 즉위에 큰 역할을 하였다.
민제
원경왕후의 아버지로, 태종 즉위 후 좌정승에 오르고 여흥부원군에 봉해진 문신.
인현왕후
숙종의 계비로 폐위와 복위를 겪은 조선 후기의 왕비.
민정중
숙종대 좌의정을 지낸 서인계 중신.
민영환
을사조약에 항거해 자결한 대한제국의 대신.
참고 자료
같은 민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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