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이씨
陽城 李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5만
2015 인구
14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수광李秀匡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건너와 문종 때 벼슬길에 올라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고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능란한 외교 솜씨로 거란과의 교섭을 성사시킨 공으로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책훈되고 양성을 식읍으로 받았다고 전한다.
시조 이수광이 거란과의 외교를 성공시킨 공으로 양성(陽城)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후손들이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양성은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일대다. 후손은 일시중파·이시중파·삼시중파·상서파·한성윤파·총제파·판사파·군사파·소윤파 등 아홉 파로 나뉜다. 집성촌은 경기도 포천시·안성시·화성시·양평군, 충청북도 충주시·진천군, 전라남도 순천시·장성군, 경상북도 의성군·선산군 등 열두 곳에 분포한다.
가문의 역사
조선 전기에 천문·역법의 대가 이순지(1406~1465)가 나왔다. 그는 세종이 한양의 북극고도를 물었을 때 관료 가운데 유일하게 답한 일을 계기로 신임을 얻어, 1433년부터 조선의 천문역법을 정비하라는 명을 받고 1442년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해 중국 역법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할 수 있게 하였다. 관직은 승지·중추원부사·개성부 유수를 거쳐 판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에 이르렀다. 이승소(1422~1484)는 1447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판서·이조판서·형조판서를 두루 지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근현대에는 제12대 외무부 장관 이동원(1926년생)과 제11·12대 국회의원 이용호(1933년생) 등이 배출되었다. 2015년 인구는 55,246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순지
세종의 명을 받아 1442년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해 조선이 독자적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할 수 있게 한 천문역산 학자다. 판중추원사와 판한성부사를 지냈다.
이승소
1447년 문과에 급제해 예조판서·이조판서·형조판서를 두루 지낸 문신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이동원
제12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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