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이씨
牙山 李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주좌李周佐
경주 이씨의 중시조인 소판 이거명의 5세손으로 전한다. 고려에서 형부상서와 판어사대사를 지냈고 사공(司空)에 추증되었다.
시조 이주좌의 후손인 이서(李舒)가 원종 때 판위위시사와 벽상공신으로 아주백(牙州伯)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아산으로 삼았다. 아산은 본래 백제의 아술현(牙述縣)이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 음봉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940년에는 인주로 고쳐졌다가 1413년 아산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온양시와 통합되어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가 되었다. 후손은 감정공파·대사간공파·부윤공파·사인공파·사직공파·아성군파·영의정당공파·정언공파·처사공파·현감공파 등 열 갈래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이석번이 병조판서를 지냈고 이인화는 참판을 역임하였다. 이 밖에 이지하·이홍·이대춘 등이 조선시대에 관직에 나아갔다. 집성촌은 강원도 양구군, 충청북도 충주시, 충청남도 천안시와 아산시, 세종특별자치시, 전라북도 정읍시 등에 형성되었다. 황해도 봉산군과 곡산군, 평안북도 선천군, 함경남도 영흥군 등 북부 지방에도 세거지가 있었다. 인구는 1985년 10,403명에서 2000년 11,520명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13,55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서
원종 때 판위위시사를 지내고 벽상공신에 올라 아주백에 봉해진 인물로, 이 가문이 아산을 본관으로 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석번
병조판서를 지낸 문신이다.
이인화
참판(參判)을 역임한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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