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맹씨
新昌 孟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1만
2015 인구
24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맹의孟儀
맹자의 51세손이라 전하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충렬왕 때 예부시랑을 거쳐 예부전서에 올랐고, 충선왕 때 신창백(新昌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본관을 신창으로 삼았다.
신창 맹씨는 고려 충렬왕 때 예부시랑을 거쳐 예부전서에 오르고 충선왕 때 신창백에 봉해진 맹의를 시조로 한다. 가문에서는 그를 맹자의 51세손이라 전한다. 본관 신창은 본래 백제의 굴직현(屈直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기량현으로 고쳐 온정군에 속하게 하였고, 뒤에 신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가 그곳이다. 아산에는 최영이 지은 집을 맹희도가 물려받아 보존한 맹씨 행단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전하며, 경내에는 세 정승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의 맹희도는 1365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좌윤과 수문전제학을 지내고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그 아들 맹사성은 1386년 문과에 급제한 뒤 1427년 우의정, 1432년 좌의정에 올라 세종대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조선 전기의 맹석흠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록되어 신창군에 봉해졌다. 과거 급제자는 문과 13명, 무과 14명, 생원시 9명, 진사시 14명, 음양과 3명을 냈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과 신창면, 경기도 성남시 일원에 형성되어 있고 황해도와 함경남도 일대에도 분포하였다. 2015년 인구는 21,45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맹희도
1365년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좌윤과 수문전제학 등을 지낸 문신이다. 우의정에 증직되었으며, 최영이 지은 아산의 집을 물려받아 맹씨 행단으로 전하게 하였다.
맹사성
1360년에 태어나 1438년에 죽은 문신으로 맹희도의 아들이다.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1427년 우의정, 1432년 좌의정에 올랐고 시호는 문정이다.
맹석흠
1429년에 태어난 무신으로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록되고 신창군에 봉해졌다.
맹세형
1588년에 태어나 1656년에 죽은 문신으로 1623년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정을 지내고 통정대부에 이르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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