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435.5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성주 도씨

星州 都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5.5만

2015 인구

143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도진都陳

고려 창업에 공훈을 세워 정승에 오르고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식읍으로 하사받은 성주에 자리 잡으면서 후손들이 이곳을 관향으로 삼았다. 다만 그 뒤로 세계가 끊어져, 고려 명종 때 전리상서를 지낸 도순(都順)을 기세조로 삼아 계보를 잇는다.

성주(星州)는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신라의 본피현이었는데 757년 신안현으로 고쳐 성산군에 속했고, 벽진군을 거쳐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로 개칭되었다가 경종 때 광평군이 되었다. 시조 도진이 성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성주를 식읍으로 받으면서 후손들이 성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기세조 도순의 손자 도유덕은 고려 때 명경진사로 종부판사를 지내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후손은 전서공파 아래 24개 파와 성주파 아래 7개 파로 갈라졌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6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 도길부(?~1388)는 도순찰사 이성계의 지휘 아래 왜구를 토벌하고 찬성사에 올랐으며, 도응은 찬성사를 지내다 조선이 서자 상장군 벼슬을 사양하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다. 조선에서는 도형(1480~1547)이 1519년 현량과에 급제했으나 기묘사화로 파직되었고, 도성유(1571~1649)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오현의 문묘 종사를 주창했으며, 도응유(1574~1639)와 도경유(1596~1636)도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병자호란에 잇달아 의병으로 나섰다. 도신수(1598~1650)는 1627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정랑과 함흥판관·울산부사를 지냈고, 도신징(1611~1678)은 상복을 둘러싼 예송 논쟁에서 기년설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성촌은 경주·울진·경산·청도·예천·대구·천안·논산·산청·고성 등 열세 곳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54,545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도말용都末用1899–1988경상북도 고령3.1운동대통령표창(1999)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도길부

도순찰사 이성계의 지휘 아래 왜구를 토벌하고 찬성사에 오른 무신이다.

고려

도응

고려에서 찬성사를 지내다 조선이 서자 상장군 벼슬을 사양하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조선

도성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오현의 문묘 종사를 주창한 학자다.

조선

도신수

1627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정랑과 함흥판관·울산부사를 지낸 문신이다.

근현대

도상록

북한에서 국가과학원 원사를 지낸 물리학자다.

참고 자료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