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주씨
尙州 周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3만
2015 인구
23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주이周頤
당나라 덕종 때 병부시랑을 지낸 인물로 전한다. 786년 부사(副使)로 신라에 왔다가 귀화하여 상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후손들이 그가 터를 잡은 상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상주 주씨는 당나라에서 병부시랑을 지내다가 786년 사신으로 신라에 와 귀화하였다는 주이를 시조로 한다. 시조가 상주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그곳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본관 상주(尙州)는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이다. 대륙에서 건너온 인물을 시조로 받드는 귀화 계통의 성씨로 분류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과 무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하였다. 문중은 도은공파, 목천파, 박사공파, 시랑공파, 창의공파, 판서공파, 교수공파의 일곱 파로 나뉜다. 조선 중종 때의 주세붕은 1542년 백운동에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창설하여 한국 서원의 효시를 열었다. 근현대에는 한글 연구의 기틀을 세운 국어학자 주시경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집성촌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에 형성되어 있다. 2000년 18,384명으로 조사되었고 2015년 인구는 22,909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주시경周時經
건국훈장 대통령장1876년에 태어나 1914년에 죽은 국어학자이다. 한국어와 한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한글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고 맞춤법 표준화의 기틀을 세웠으며,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하는 등 계몽운동에도 힘썼다.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주시경周時經 | 1876–1914 | 황해도 평산 | 계몽운동 | 건국훈장 대통령장(1980)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주세붕
1495년에 태어나 1554년에 죽은 문신이자 학자로 호는 신재(愼齋)이다. 1522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고 풍기군수로 있던 1542년 백운동에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도승지·대사성·호조참판을 지냈으며 무릉잡고와 죽계지 등을 남겼다.
주영복
1927년에 태어나 2005년에 죽은 군인이자 관료로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주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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