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금씨
奉化 琴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5만
2015 인구
22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금용식琴容式
고려 초에 삼한벽상공신에 올라 태사(太師)를 지낸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든다. 계보가 뚜렷하게 이어지는 고려 후기의 금의(琴儀)를 중시조로 삼는다.
봉화 금씨는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에 오른 금용식을 시조로 하고, 고려 후기의 명신 금의를 중시조로 받든다. 봉화에 자리 잡은 것은 10세 금우공(琴遇工) 이후의 일로, 그 이전에는 강화·용인·옥천·담양·영암 등지에 흩어져 살았다. 금우공이 봉화에 들어와 정착한 뒤로 봉화를 관향으로 확정하였다. 본관 봉화(奉化)는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이다.
가문의 역사
중시조 금의는 1184년(명종 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우부승선·첨서추밀원사·한림학사승지를 거쳐 1218년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고, 수태보 판이부사에 이르러 벽상공신에 녹훈되었다. 문장에 뛰어나 과거를 여러 차례 주관하며 많은 명사를 뽑았고 금나라 사신과의 외교 담판에서도 이름을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4명과 다수의 생원·진사시 합격자를 배출하였고, 안동과 예안 일대에서 퇴계 이황의 문하로 이어지는 학맥을 이루었다. 근현대에는 상공부 장관을 지낸 금진호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2015년 인구는 25,07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금의
1153년에 태어나 1230년에 죽은 문신으로 봉화 금씨의 중시조이다. 1184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문하시랑평장사와 수태보 판이부사에 올랐다. 문장에 뛰어나 과거를 여러 차례 주관하며 많은 인재를 선발하였다.
금보
1521년에 태어나 1584년에 죽은 학자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 가운데 글씨로 이름난 세 사람을 이르는 퇴문삼필(退門三筆)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금난수
1530년에 태어나 1604년에 죽은 학자이자 관료이다.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봉화현감을 지냈다.
금진호
1932년에 태어나 2024년에 죽은 관료로 제31대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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