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 지씨
鳳山 智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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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친일 기록
5,751
2015 인구
40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지채문智蔡文
고려 현종 때의 무신이다. 1010년(현종 1) 중랑장으로서 거란이 침입하자 화주를 중심으로 동북 방면을 방비하다가 동북면도순검사 탁사정과 합세해 서경에 들어가 거란군을 격퇴하였다. 왕이 남쪽으로 피란할 때 여러 차례 신변을 지키며 나주까지 무사히 호종하여 전공으로 전토 30결을 하사받았고, 1026년 상장군 우복야에 올랐다. 1031년 현종의 남행을 호종한 공으로 1등공신에 추록되었다.
봉산 지씨는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막아내고 왕을 호종한 무신 지채문을 시조로 한다. 봉주 지씨(鳳州智氏)라는 이칭으로도 불렸는데, 봉주는 봉산의 옛 이름이다. 본관 봉산(鳳山)은 고구려 때 휴암군(鵂嵓郡) 또는 조파의·휴류성 등으로 불렸고, 신라 때 서암군(栖巖郡)으로 고쳤다가 고려 초에 봉주로 개칭되었다. 충렬왕 때 봉양군(鳳陽郡)으로 고쳤다가 다시 봉주가 되었고,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 봉산군으로 확정되었다. 오늘날에는 황해북도 봉산군 일대에 해당한다.
가문의 역사
시조 지채문 이후 아들 지맹(智猛)이 1055년 상서좌복야로서 수사공을 겸하였고, 지총연(智寵延)은 숙종 때 예부시랑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지숙연(智淑延)은 예종 때 동북면병마사와 서북면병마사를 역임하는 등 고려 전기에 무반 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증손 지녹연(智祿延)은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우고 동지추밀원사에 올랐으나, 1126년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귀양 가던 중 충주에서 살해되었다. 8세손 지대성(智大成)은 1198년(신종 원년) 제술과 시부에서 장원 급제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지득남(智得男)이 1627년 정묘호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공으로 첨절제사에 제수되었다. 후대에 평창파·제천파·장단파·선천파로 나뉘었으며, 집성촌은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천동리와 응암리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5,75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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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지채문
1010년 거란의 침입 때 서경에서 거란군을 격퇴하고 현종을 나주까지 호종한 무신이다. 상장군 우복야에 올랐고 1등공신으로 추록되었으며, 봉산 지씨의 시조이다.
지녹연
1069년에 태어나 1126년에 세상을 떠난 무신으로 지채문의 증손이다. 음서로 벼슬에 나아가 여진 정벌의 공으로 전중시어사가 되었고, 동북면병마부사와 서북면병마사를 거쳐 1125년 동지추밀원사에 올랐다. 이듬해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귀양 가던 중 충주에서 살해되었다.
지대성
지채문의 8세손으로 1198년(신종 원년) 제술과 시부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참고 자료
같은 지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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