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우씨
丹陽 禹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19.1만
2015 인구
4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우현禹玄
고려 광종 때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낸 인물로, 단양 지역의 유력 향리였다. 우리나라 우씨는 사실상 단양 우씨 단일 본관이다.
충청북도 단양군을 본관으로 하며, 시조 우현이 고려 초 단양 지방의 호장을 지내면서 세거지가 그대로 본관이 되었다. 단양은 남한강 상류의 요충지로 고구려의 적산현, 신라의 적성현을 거쳐 고려 때 단양으로 불렸다. 우리나라 우씨는 거의 전부가 단양을 본관으로 하는 단본(單本) 성씨여서, 우씨라 하면 곧 단양 우씨를 가리킨다.
가문의 역사
6세손 우중대가 문하시중에 올랐고 그의 아들 우천규·우천계·우천석이 모두 현달하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고려 말에는 <역동>이라 불린 대학자 우탁이 정주학을 처음 해석해 후학을 길렀고, 우현보는 단양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에서는 우인열이 개국원종공신이 되어 판삼사사를 지냈으며,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35명을 배출했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우재룡禹在龍
건국훈장 독립장1906년부터 영일·경주·청송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했고, 1915년 박상진·채기중 등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해 군자금 모금과 무기 조달, 친일파 처단을 주도했다. 1920년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7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우덕순禹德淳
건국훈장 독립장충북 제천 출신으로 안중근을 따라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에 함께 참여한 하얼빈 의거의 동지이며, 채가구역에서 대기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나, 1920~30년대 만주에서 친일단체 조선인민회 회장을 지낸 행적을 두고 밀정 의혹이 제기되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우종현禹鍾鉉
군인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부위로 복무하다 1907년 군대 해산 후 일본 육군으로 소속을 옮겨 조선군사령부에서 보병 중위까지 올랐다.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우탁
정주학을 처음으로 해석해 후학에게 전한 대학자로 '역동선생(易東先生)'이라 불렸다.
우현보
고려 말 정당문학·판삼사사를 지내고 단양부원군에 봉해진 문신이다.
우인열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판삼사사를 지낸 무신이다.
우장춘
'종의 합성' 이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육종학자로, 광복 후 귀국해 한국 농업의 기틀을 세웠다.
우원식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우상혁
세계실내육상선수권 높이뛰기 금메달을 딴 육상 선수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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