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이씨
公州 李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3만
2015 인구
16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천일李天一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53년(신라 박혁거세 5) 중국 한나라에 들어가 대장군에 올랐고 흉노 정벌에 공을 세워 요동백(遼東伯)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병으로 나아가지 않고 돌아온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중평장사에 이르고 공산군(公山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를 문무(文武)라 하였다고 한다.
공주 이씨는 공산군에 봉해진 이천일을 시조로 한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53년 중국 한나라에 들어가 대장군에 올랐고 흉노 정벌의 공으로 요동백에 봉해졌으며, 돌아와 문하시중평장사에 이르고 공산군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후손들이 공산(公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는데, 공산은 공주(公州)의 이칭이므로 공산 이씨를 공주 이씨라고도 한다. 본관지는 오늘날 충청남도 공주시이다. 계보상 31세 이백령이 양산 이씨의 관조로, 34세 이자송이 수원 이씨의 관조로 각각 갈라져 나갔다.
가문의 역사
조선 초의 이명덕은 1396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과 동지총제를 거쳐 판중추원사에 올랐다. 호를 송은이라 한 이명성은 이명덕과 함께 명탄서원에 모셔져 가문의 대표적 선현으로 받들어진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과 청양군 일대에 형성되었고, 조선 말에는 이명성의 13세손 이공원이 공주에서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로 옮겨 가 한 갈래를 이루었다. 근현대에는 3·1운동 민족대표 이필주를 비롯해 군인 이형근·이주일 등이 가문 인물로 오른다. 2015년 인구는 42,592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이필주
건국훈장 대통령장1870년에 태어나 1942년에 죽은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2월 그의 집에서 기독교계 인사들이 회동하여 3·1운동 거사를 논의하였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명덕
호는 사봉이다. 1396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과 동지총제를 거쳐 판중추원사에 올랐다.
이명성
호는 송은이며 시호는 문성공이라 전한다. 조선 초의 이명덕과 함께 명탄서원에 모셔졌다.
참고 자료
같은 이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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