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068.9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곡부 공씨

曲阜 孔氏

2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8.9만

2015 인구

10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공소孔紹

공자의 54세손으로 원나라 한림학사였으며 1351년 노국대장공주를 배행해 고려에 들어와 귀화, 평장사에 오르고 회원군에 봉해진 동국파의 중시조이다.

시조는 공자(孔子)이며, 한국에 정착한 중시조는 공자의 54세손 공소(孔紹)이다. 그는 원나라 한림학사로서 1351년 노국대장공주를 배행해 고려에 들어와 귀화했고 창원(昌原)을 본관으로 하사받아(賜籍) 창원 공씨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창원 공씨로 불리다가 1794년(정조 18) 정조가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로 본관을 고치게 하여 오늘의 곡부 공씨가 되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조선 초 공부(孔俯)는 집현전 태학사를 지내며 초서와 예서에 능해 이름을 떨쳤고, 그 아우 공은(孔㒚)은 고려에 절의를 지켰다. 두 사람을 파조로 어촌호(漁村戶)와 고산호(孤山戶)로 나뉜다. 조선에서는 중종 때 문신 공서린, 정조 때 초계문신 친시에서 장원한 공윤항 등을 배출했다. 근현대에는 농림부 장관 공진항, 외무부 장관 공로명, 대통령 영부인 공덕귀 등이 있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공칠보孔七甫

대통령표창

족보명은 석윤(錫允)으로, 1919년 3월 29일 오산 장날 만세시위에 참여해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태형 90대를 받았으며 '오산 8의사'의 한 사람으로 기려진다. 199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공사일孔士一1883–?전라북도 김제의병건국훈장 애국장(1995)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성학孔聖學

종교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대한제국 성균관 부제학을 지낸 유학자이자 개성의 인삼·전기·양조업을 아우른 기업인으로, 1935년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로 수록되었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유교 부문에 포함되었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공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집현전 태학사를 지냈고 초서와 예서의 명필로 이름났다.

조선

공서린

1507년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기묘사화 때 조광조 등과 함께 투옥된 문신으로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근현대

공진항

제4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관료이자 만주에서 농장을 경영한 실업가이다.

근현대

공덕귀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이자 여성운동가·신학자이다.

근현대

공로명

제25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외교관이다.

근현대

공지영

《도가니》 등을 쓴 소설가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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