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길씨
海平 吉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6만
2015 인구
18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길당吉唐
송나라에서 동래한 팔학사 가운데 한 사람이라 전한다. 고려 문종 조에 은청광록대부 참지정당문학에 오르고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져 해평을 관적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시조로부터의 선계가 분명하지 않아 고려 후기에 성균관 생원을 지낸 길시우(吉時遇)를 1세조로 삼아 계보를 잇는다.
해평 길씨는 송나라에서 동래한 팔학사의 한 사람이라 전하는 길당을 시조로 한다. 그가 고려 문종 조에 은청광록대부 참지정당문학에 올라 해평백에 봉해진 데서 본관이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다만 시조로부터의 선계가 명확하지 않아, 고려 후기 성균관 생원을 지낸 길시우를 1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본관 해평은 오늘날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이다.
가문의 역사
길시우의 증손 길재(1353~1419)는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와 문하주서 등을 지냈고,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한 뒤에는 벼슬을 마다하고 후학을 기르는 데 힘써 조선 사림 학맥의 근원이 되었으며, 그 학통이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고 전한다. 길재의 6대손 길겸은 1546년 생원시를 거쳐 1548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과 당진현감을 지냈고, 길회(1549~1593)는 1577년 알성문과에 합격해 예문관검열과 신창현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와 세자를 호종하였다. 과거 급제자는 조선시대 문과 6명, 무과 14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은 경기 여주·파주, 강원 화천·춘천, 충남 금산, 경남 사천·하동·함양·거창, 전북 정읍·고창·무주, 전남 장성·순천·구례와 평안북도 선천·영변·태천·운산·박천, 평안남도 맹산·순천 등지에 있다. 2015년 인구는 35,823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길선주吉善宙
건국훈장 독립장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가 체포되었다. 3월 1일 당일에는 지방에 있어 태화관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무죄 판결을 받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사실이 뒤에 확인되어 2009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길재
1386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와 문하주서 등을 지냈으며,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가 망한 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 교육에 힘써 조선 사림 학맥의 근원이 되었고, 그 학통이 김종직·김굉필·정여창·조광조로 이어졌다고 전한다.
길겸
길재의 6대손으로 1546년 생원시에 오르고 1548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과 당진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길회
1549년에 태어나 1593년에 세상을 떠났다. 1577년 알성문과에 합격하여 예문관검열과 신창현감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뒤 세자를 호종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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