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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542.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함평 모씨

咸平 牟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1만

2015 인구

254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모경牟慶

중국 홍농 출신으로 북송 흠종 때 대사마대장군을 지냈다고 전한다. 고려에 사신으로 건너와 이자겸의 모반을 막은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그 뒤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가 자리 잡은 모평을 본관으로 삼았다.

함평 모씨는 북송 흠종 때 대사마대장군을 지냈다는 모경을 시조로 한다. 그가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이자겸의 모반을 막은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고 그대로 귀화하였다고 전한다. 본관 함평은 본래 백제의 다지현이었는데 신라 때 다기현으로, 고려 태조 때 모평현(牟平縣)으로 고쳐졌고 1409년(태종 9) 함평현으로 개편되었다. 오늘날 전라남도 서부의 함평군 일대가 그곳이며, 모평이라는 옛 지명이 성씨의 한자와 같은 모(牟) 자를 쓰는 점이 이 가문의 내력과 얽혀 있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로는 모순·모세무·모세번·모경관·모달겸 등 문과 5명, 모옥성·모유추·모두해 등 무과 3명, 생원시 1명을 냈다. 조선 초의 모순은 1417년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과 사헌집의를 지냈고, 대마도 원정 때 납치된 백성을 구출한 공이 기록되어 있으며 뒤에 세조의 회유를 거절하고 진주에 유배되었다. 조선 후기의 모달겸은 1789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과 성균관직강을 지냈으며, 바른말을 잘하여 권세를 부리는 무리를 가차없이 탄핵하였다고 전한다. 근대에는 의병장 모충이가 항일 투쟁에 나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2015년 인구는 20,543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모충이

건국훈장 애국장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의병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모순

1417년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과 사헌집의를 지낸 문신이다. 대마도 원정 때 납치된 백성을 구출한 공이 전하며, 뒤에 세조의 회유를 거절하고 진주에 유배되었다.

조선

모세무

1637년에 태어난 문신으로 숙종 때 흥양현감을 지냈다.

조선

모달겸

1749년에 태어나 1821년에 죽은 문신으로 1789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장령과 성균관직강을 지냈으며 바른말을 잘하고 권세를 부리는 무리를 가차없이 탄핵하였다고 전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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